독서의 계절이 돌아왔다. 숨막히는 무더위를 지나 조석(朝夕)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돌아왔으니 책 읽기 좋은 환경임은 분명하나 실상을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독서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는 도서 판매 부수는 가을보다는 여름과 겨울이 더 많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책 읽는 시간마저 가을이 여름이나 겨울보다도 짧다고 한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니 독서보다는 놀러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독서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경이로운 발전도 따지고 보면 독서의 힘이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새무얼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한국의 경제성장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1960년대 한국과 아프리카 가나의 경제상황은 1인당 GNP가 50여 달러로 비슷했지만 지금 가나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빈민국이라며 그 요인으로 문화적 차이를 들었다. 한국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뜨거운 교육열이었고 그 바탕에 독서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너무 빨리 달려와서 그런지 선진국 문턱에서 헐떡인 지도 십 년이 넘었다.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각종 지표에 대한 전망도 우울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병을 치유하기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한 묘안을 찾지 못했다. 흔한 말로 ‘청치 탓이려니’하면 그만이지만 그렇다고 뾰족이 달라지는 것도 없다.
세계가 놀란‘한강의 기적’이 위기에 처한 것은 아마도 헌팅턴의 분석처럼 문화의 힘이 한계에 도달한 것은 아닌가 싶다. 특히 창의적 발상의 원천이라 할 책 읽는 문화가 후퇴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양서(良書)를 내겠다는 출판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국가의 미래인 청소년들은 갈수록 격화되는 입시 경쟁으로 참고서에 파묻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열악한 독서 문화는 문화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2007년)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연평균 독서량은 성인이 12.1권으로 한 달 평균 겨우 1권을 읽고 있는 실정이다. 한창 책 읽는 재미에 빠져야할 학생들의 연평균 독서량은 13.5권에 불과하다. 특히 성인 10명 가운데 2명과 학생 10명 가운데 1명은 일 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은 여가활동시 TV시청이, 학생은 게임, 인터넷하기 등이 독서보다 월등히 높았다. 유엔의 조사를 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한국인의 한 달 독서량은 세계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하며, 독서 시간은 흡연자의 하루 흡연시간(20분)보다도 짧다.
고문진보에 보면 ‘가난한 사람은 책으로 인해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인해 존귀하게 된다’고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속에 가시가 돋친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또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독서로 더 많은 지식을 취하라. 부는 일시적인 만족을 주지만 지식은 평생토록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이밖에도 독서와 관련된 명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래기업(Managing for the future:1992)’에서 ‘기적을 의미하는 천재적인 영감은 방대한 독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생긴다’고 했다. 그렇다. 기적은 결코 요행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해야 비로소 기적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적도 결국은 독서의 힘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가을이다. 단풍놀이도 좋지만 이 가을을 풍성하게 수놓을 기적을 책 속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