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마음이 쓸쓸해진다. 낙엽이 떨어져 거리에 나뒹구는 것을 보면 마음이 더하다. 이뿐 아니다. 가을비 내리고 스산한 바람 불 때면 더욱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런 마음은 지금이나 예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조선 선조 때의 정치가이며 시인이며 문학가이며 학자인 송강 정철의 경우도 그러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분의 시 ‘秋日作(추일작)-가을날에 짓다’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하니 草蟲秋近床(초충추근상)이라-산비는 밤에 대나무를 울리고 풀벌레소리에 가을은 책상에 가까워지도다”라고 노래했다.
사람은 누구나 가을이 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가을의 쓸쓸한 정경을 볼 때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이럴 때 정철은 책상과 가까워졌다. 책상과 가까이 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는 생각에 젖으면서 글을 쓰고 시를 썼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을 보내기인가?
쓸쓸한 가을을 보내기 위해 책상과 가까이 해서 컴퓨터 오락으로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이럴 때 우리 모두가 정철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하겠다. 정철의 가을 보내기를 본받고 싶지 않는가? 우리들은 배우는 자이기에 책상을 가까이 하고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시를 씀으로 자신을 잘 다듬어가고 다스려 나가야 하겠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때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무엇일까? 그것은 마음가짐이다. 즉 집중이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데 가장 장애물이 되는 것은 잡념이다. 책만 들면 어찌나 잡념이 떠오르는지. 집중이 잘 되면 책을 읽는데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책 들어 펴기가 가장 어렵고 책을 들어 펼쳤지만 집중을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두 줄 읽다가 한두 쪽 읽다가 마는 것은 집중력의 결여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을 키우도록 애를 써야 하겠다.
책만 들면 집중이 되지 않고 잡념이 들어오는 것은 남녀노소 마찬가지다. 특히 나이 들면 집중력이 더 떨어진다. 책을 들면 그 때부터 세상의 온갖 생각들이 방해를 놓는다. 잡념을 물리치는 것이 책을 잘 읽는 비결이다.
<湛軒書(담헌서)>에서도 독서할 때 “專心易氣(전심이기)하여 毋生雜念(무생잡념)-마음을 오로지 하고 기을 편안히 하여 잡념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였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잡념을 떠올리지 말고 집중하라고 하였다.
또 책을 읽을 때 가져야 할 자세는 몸가짐이다. 책을 읽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책을 읽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湛軒書(담헌서)>에서는 “옷깃을 정제하고 얼굴을 엄숙히 하라”고 하였다. 몸가짐이 되어 있지 않으면 책을 펴지 말라는 뜻이다.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되어 있을 때 그것이 몸가짐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는 웃어른 대하듯이, 선생님을 만나듯이 옷깃을 여미고 책을 통해 한 수 배우고자 하는 겸비의 자세가 얼굴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학문을 하고자 하는 비장한 얼굴로 책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선입관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湛軒書(담헌서)>에 보면 “毋主先入(무주선입)하라-먼저 가지고 있는 생각(선입관)을 주로 하지 말라)“고 하였다. 저자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책의 제목에 대한, 책의 목차에 대한, 책의 내용에 대한 선입관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런 자세를 갖고 독서의 계절에 책상을 가까이 해서 책 읽기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