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울산 강북 관내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 초,중263명의 학생이 대전으로 체험학습을 떠나는 날이다. 아침 7시 10분에 버스 7대가 출발하였다. 그들을 보내놓고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비가 올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였다. 좋은 날씨 속에 아무런 사고 없이 실제 도움이 되는 체험학습이 되기를 고대할 뿐이다. 이들을 보내 놓고 교육청에 출근해서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배움은 어릴 때부터가 좋다. 幼而不學(유이불학)이면 老無所知(노무소지)라고 하지 않는가?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어 천대를 받게 된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 배움이 책 읽기라고 했으니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 때가 참 중요하다. 심어야 할 때를 놓치면 거둘 수가 없는 것과 같이 배워야 할 때를 놓치면 지식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니 애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부터 책 읽기를 하도록 해야 한다. 책 읽기 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안 된다. 피아노학원 가고, 미술학원 가고, 영어학원 가고, 컴퓨터학원 가고, 갖가지 학원 간다고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수업 마치고 나면 학원 가야 하고 학원 갔다 오면 밤 11시 ,12시가 되니 도저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면 안 된다. 이런 것은 모두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배우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謂學不暇者(위학불가자)는 雖暇라도 亦不能學矣(역불능학의)라는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겨를(暇)이 없어 배우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는 비록(雖) 겨를이 있어도 역시 배우지 않는다”고 하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책 읽기가 몸에 배여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록 여가가 생긴다 하더라도 책을 읽지 않게 된다. 그러니 시간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핑계대서는 안 된다. 핑계가 책 읽는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책을 읽을 때 요구되는 것 중의 하나가 인내이다. 독서는 산에 놀러 가는 것(遊山)과 같다고 한다. 산에 반도 오르기 전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은 산의 정취를 느낄 수가 없듯이 책을 다 읽지 않고는 책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고비를 넘겨야 한다.
물도 99도에서는 절대 끓지 않고 정확히 100도가 되어야 끓지 않는가? 99도까지 열을 가했어도 1도가 모자라 물을 수증기로 바꿔놓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마지막 모자라는 1도의 에너지 때문에 중도에 책 읽기를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1도를 채워야 변화가 된다. 100도의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온다. 이와 같이 한 권의 책을 다 읽기까지 요구되는 것은 인내의 에너지이다. 이게 보태지면 책 맛에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이이(李珥) 반드시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음 책을 읽으라고 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기 위해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시한부 암환자’인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는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고 꿈에 대한 것이 주제였다. ‘당신의 어릴 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였다. 그 내용 중에는 꿈을 가능한 크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지라고 하면서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기초부터 제대로 익히라고 강의하셨다. 기초부터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책 읽기를 차근차근히 해야 한다. 꿈을 진짜로 이루기 위해서도 책을 읽어야 한다. 마지막 모자라는 1도의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그리고 랜디 포시 교수님은 성실함이 겉멋보다 낫다고 하시면서 “멋은 짧고 성실함을 길다. 멋은 관심을 끌기 위해 겉으로만 노력하지만 성실함은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온다. 그러니 불평할 시간이 있으면 노력하라”고 마지막 강의에서 말씀하셨다. 멋을 부리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 불평하려 하지 말고 진실된 마음으로 성실하게 책 읽기에 마음을 쏟음에 노력을 기울이면 어릴 적 꿈을 진짜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겉만 꾸미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배움을 위해 책을 읽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