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란 나는 풀과 함께 자랐다. 소를 먹이기 위해 꼴을 벨 때도, 토끼풀을 벨 때도 지금은 풀꽃이라고도 하는 잡초들과 뒹굴었다. 그것뿐만 아니다. 어머니와 밭을 맬 때도 그놈의 잡초 때문에 낑낑거렸다. 지금도 시골에 가서 풀을 뽑고 베어낼 때마다 풀은 그저 성가신 존재이고 잡초일 뿐 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잡초들이 작고 정겨운 꽃들로 다가올 때도 있다. 홀로 산길을 걷거나 들길을 걸을 때다. 또 도심의 길를 걸을 때도 돌이나 아스팔트 틈에서 살아남아 작은 꽃을 피우는 모습을 목격할 때 잡초가 아니라 생명의 풀꽃으로 다가온다.
꽃은 어디에나 있다.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도 있고, 꽃밭에도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 귀퉁이에도 풀꽃은 있다. 흙이 있는 곳엔 작은 풀꽃 씨들이 날아와 생명을 이룬다. 그런데 요즘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그 풀꽃들의 이름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친다.
꽃의 이름을 알고, 씨는 어떻게 맺고, 꽃이 어디에서 어떻게 피고 어떤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왜 그런 꽃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어떨까? 훨씬 친근해질 것이다.
세밀화로 그린 어린이 풀꽃 도감 보통 크고 아름다운 꽃들만이 이름을 가지고 있고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흔히 잡초라고 생각하는 아주 작은 풀꽃들도 이름이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쓰임과 아름다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풀꽃> (이영득 글, 박신영 그림)은 '풀꽃'들의 이야기다. 그림책은 제비꽃, 까마중, 쇠비름, 할미꽃, 토끼풀, 강아지풀, 뱀딸기, 바랭이, 달맞이꽃, 괭이밥, 소리쟁이, 애기똥풀 등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38종의 풀꽃들을 사진보다 더 정교하게 그린 풍부한 삽화가 그려져 있다. 또 풀꽃이 열매를 맺는 과정과 씨앗을 퍼뜨리는 방법, 재미있는 풀꽃 놀이 등도 설명되어 있다. 생동감이 있고 정겨움이 묻어나는 일종의 풀꽃 백과사전이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풀꽃들을 감상하다보면 이것도 꽃이야 하는 풀꽃들도 있다. 쇠뜨기, 바랭이, 쇠비름 같은 것들이다. 특히 쇠뜨기가 그렇다. 그 이야길 잠시 엿들어보자.
"소가 잘 뜯어 먹어서 쇠뜨기예요. 줄기와 잎이 뚜렷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은 풀이지요. 솔잎같이 생긴 부분을 영양줄기라 해요. 방울뱀 꼬리같이 생긴 부분은 꽃인 셈인데 뱀밥이라 하고요. 뱀밥을 건드리면 먼지 같은 게 날리는데, 그게 홀씨예요. 쇠뜨기는 땅속줄기를 뻗으면서 자라는데 뿌리가 아주 깊어요. 그래서 쇠뜨기 뿌리를 따라가면 지구 반대편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은 쇠뜨기에 대한 추억이 많을 것이다. 얼마나 뿌리가 깊고 질긴지 온 몸을 다해 뽑아도 뿌리 끝까진 뽑히지 않는 쇠뜨기들. 결국은 이놈을 뽑다가 뒤로 넘어져 뒹굴기도 하고 뿌리와 함께 따라나오는 흙가루가 입이나 눈에 들어가 고생했던 추억 아닌 추억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요 녀석도 풀꽃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다른 풀꽃의 이야길 들어보자. 이름도 요상한 '며느리배꼽'이란 풀꽃이다. 배꼽같이 오목한 곳에 열매가 달렸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며느리'란 이름은 뭔가. 꽃이름 중에 며느리란 낱말이 들어간 꽃은 대부분 가시가 달려 있는 걸 보면 혹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미움 같은 것이 들어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며느리배꼽은 이름이 별난 풀이에요. 배꼽같이 오목한 곳에 열매가 달린다고 이런 재미난 이름이 붙었어요. 열매는 풀색에서 보라색이 되었다가 남색으로 익는데, 반들 반들 윤이나오. 며느리배꼽은 덩굴로 자라요.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어서 다른 물체에 잘 붙어서 올라가요. 줄기뿐 아니라 잎자루에도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어요. 살갗이 살짝 긁히기만 해도 벌겋게 되고 가려워요. 잎은 세모꼴인데 먹어보면 새콤새콤 신맛이 나요. 비슷한 풀로 며느리밑씻개가 있어요."
잎이 새콤새콤 신맛이 나는 풀꽃으론 괭이밥도 있다. 괭이밥 잎은 치질 치료에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풀꽃 중에서 내 관심을 끄는 것은 까마중과 쇠비름이다. 열매가 스님 머리를 닮아서 까마중이란 이름을 가진 풀꽃, 이 까마중은 작고 하얀 꽃보단 열매가 맛있다. 어릴 때 '때알'이라고 불렀던 까마중의 까맣게 익은 열매를 한 주먹 따서 입에 가득 넣어 먹었던 그 달콤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또 하나가 쇠비름이다. 비름나물 맛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요 녀석은 뿌리를 흙 위에 살짝 걸쳐놓은 듯하며 살아간다. 질긴 쇠비름하곤 반대다. 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말이 풀꽃이지 잡초란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런데 왜 요 녀석이 기억에 남느냐고? 눈깔대기 놀이로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쇠비름의 줄기를 톡 잘라 위아래 눈꺼풀에 걸쳐 놓고 눈을 까는데 사용하곤 했다. 놀이가 없던 시절 쇠비름은 개구쟁이 꼬맹이들의 하나의 놀이기구였다.
지구에 생명을 주는 풀꽃 풀이 없는 곳엔 생명도 없다. 봄에 산과 언덕, 숲을 거닐면 싱그런 풀향이 그리 좋을 수 없다. 그 풀은 지구의 살갗과 같다. 벌거벗은 맨땅에 풀이 자라면 땅이 살아난다. 땅이 살아나면 흙속의 미생물도 살아나고 벌레도 생겨난다. 그러면 새도 날아들고 동물도 찾아온다. 풀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생명이 된다. 그렇게 풀은 지구의 살갗과 같은 역할을 한다. 글쓴이와 그린 이가 우리의 풀꽃들을 선보인 연유도 하찮게 여기는 풀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풀꽃>은 글쓴이가 좋아하는 풀꽃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풀꽃들의 이야기다. 학교나 놀이터, 길가의 버려진 공터, 텃밭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풀꽃들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풀꽃들이 어떻게 번식하고 꽃을 피우고 왜 그런 이름을 가졌는지 세밀한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은 어린이 풀꽃 도감이지만 엄마나 아빠와 함께 보면 더욱 좋다. 또 아이들의 손에 책을 들려주고 풀밭으로 달려가 풀꽃들을 찾아 이름을 맞혀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책의 끝머리에 토끼풀을 이용한 시계나 꽃목걸이 만들기, 민들레시계, 강아지풀 콧수염, 바랭이 우산, 쇠뜨기 수수께끼, 질경이 씨름 같은 재미있는 놀이도 소개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풀꽃 경험도 할 수 있다. 책상에만 박혀 있는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과 풀꽃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