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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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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책은 내 인생의 반려자

"사장님, 지난번 주문한 책이 왔습니까?"

퇴근 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습관적으로 가는 곳은 시골 읍내의 작은 서점입니다. 인터넷 주문도 가능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나는 내 발로 걸어가서 책 냄새를 맡으며 책을 고르고 주문하는 내밀한 기쁨을 사랑합니다. 이제는 돋보기를 써야 편안하게 눈에 들어오는 활자들이지만 책을 볼 수 있다는 기쁨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지천명을 넘어 삶의 이치를 터득하며 완급을 조절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세를 얻게 해 주는 것은 책입니다. 그러니 책이 없는 세상은 암흑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즐겨보는 책은 <고전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입니다. 한꺼번에 읽기보다는 소금처럼 꼭 필요한 분량만 섭취하는 책입니다. 다른 책을 읽기 전에 마음가짐을 준비하는 책입니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촌철살인의 명문장들이 잠든 영혼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저녁식사를 위해 부지런히 부엌일을 마치고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다음, 도서관 전용 책가방을 메고 강진도서관에 들어가면 나의 행복한 시간이 시작됩니다. 독서노트에 읽기 시작한 시각, 쪽수를 적고 인상적인부분을 꼼꼼하게 메모로 남기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가난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독학할 수 있었던 힘도 책 덕분입니다. 주경야독하며 통신강의록 한 권에 의지해서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합격하며 나를 일어서게 했던 스승은 곧 책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참고서를 혼자 배우던 절박함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나에게 책은 내 인생의 스승이자 지침서입니다. 한 끼 밥은 먹지 않아도 견딜 수 있지만 하루 독서를 하지 않으면 금세 빛을 잃고 시들해지는 정신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비무장지대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아들이 멀리 서울에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지켜보며 나도 함께 책을 읽으며 마음을 보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몸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지혜를 닦는 아들과 마음으로 만나는 퇴근 후 도서실에서 만나는 책 한 권.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수학 문제와 홀로 싸워야 했던 책 읽기가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읽는 행복한 책 읽기.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듯 3 권을 읽지는 못하고 한 권씩 읽어내면 밤하늘의 별님과 달님을 친구삼아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도 행복한 가을밤입니다. 직업전선에서 은퇴하는 그날부터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하루 3권 책 읽기입니다. 책을 내 인생의 반려자로 삼아 부모 노릇, 선생 노릇하느라 수십 년간 무디어진 영혼을 닦으며 살 수 있는 그 날을 즐겁게 기다리며 살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온 세상이 책입니다. 단풍잎은 나무의 책이요, 드높은 가을 하늘은 창조주의 책입니다. 하늘과 땅의 책들이 넘치고 위대한 영혼들이 남긴 책들이 풍성한 가을은 힘든 세상을 이겨낼 피난처이자 최고의 친구입니다.

나도 나무들처럼 빈 가지로 돌아갈 날을 재며 내 인생의 책장에 남길 단어를 고르며 오늘 하루를 엮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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