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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배움에는 멈춤이 없어야

논어에 학문(學問)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학문은 물을 거슬러 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지 않으면 곧 물러나느니라고 하였다. 즉 “學問(학문)은 如逆水行舟(여역수행주)하여 不進則退(부진즉퇴)니라”고 하였다.

이 글을 보아서는 학문(學問)에 대한 뜻을 알 수는 없다. 의미가 밝혀져 있지 않고 학문(學問)의 성격에 대한 설명만 되어 있다. 그러면 학문(學問)이란 무엇일까? 학문의 정의를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국어사전에는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한자사전에는 “지식(知識)을 체계적(體系的)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한 마디로 학문(學問)이란 ‘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학문이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고 익히는 것이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는 학문(學問)에 대한 정의가 잘 나타나 있다. 학문이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배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배우지 않으면 전진이 아니라 퇴보가 되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은 물을 거슬러 가는 배와 같다. 물이 흐르는 방향의 반대로 나아가는 배와 같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물이 흐르는 방향의 반대로 나가가는 배는 쉬지 않고 배를 저어야 한다. 멈출 수가 없다. 멈추면 그때부터 후퇴다. 제자리도 아니다. 제자리지만 되면 멈출 수가 있겠는데 그렇지 않다. 그러니 계속해서 노력의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가 있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배움에 있어서는 멈춤이 통하지 않는다. 멈춤만큼 후퇴하기 때문이다.

배움이 곧 책 읽기라 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같이 책을 읽어야 함을 말한다. 하루도 멈춤이 없어야 한다. 양을 줄일 수는 있어도 멈춤은 안 된다. 질은 떨어질 수 있어도 멈춤은 안 된다. 그게 배움의 원리이다.

자전거를 타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넘어지지 않는다. 제자리 멈춰 있기가 오히려 더 힘들다.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흔들거리다가 그만 넘어지고 만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멈추면 그때부터 흔들거린다. 책 읽기를 멈추면 곧 넘어진다.

책 읽기에 대한 맛이 없어진다. 앞과 연결이 잘 안 된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노력을 들여도 효과는 더 떨어진다. 그러니 배움에 대해서는 책 읽기에 대해서는 멈춤은 금물이다. 후퇴가 있을 수 없다. ‘일보후퇴,이보전진(一步後退,二步前進)’이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건 배움의 원리가 아니다.

멈춤은 곧 후퇴다. 일보후퇴는 조금의 전진이 아니고 십보,백보의 후퇴임을 알아야 한다. 또 멈춤이 제자리가 아니다. 제자리는 있을 수 없다. 그만큼 외부적인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다. 배움이 순풍에 돛을 달고 배가는 것이면 멈춤도 제자리일 수도 있고 전진에도 보탬이 되겠지만 배움은 역풍에 돛을 달고 배가는 것이니 멈춤은 오직 퇴보일 뿐이다.

그러니 배움에는 멈춤이 없다. 책 읽기에는 멈춤이 없다. 책 읽기는 오직 나아가는 것이다. 전진하는 것이다. 인내하며 전진하는 것이다. 노래하며 전진하는 것이다. 땀 흘리며 전진하는 것이다. 농부가 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밭 갈듯이 땀 뻘뻘 흘려야 한다. 농부가 봄에 씨 뿌리며 땀을 흘려 놓으면 가을에 바랄 바가 있게 되듯이 학생들이 배움의 때에 부지런히 씨 뿌리며 배워 놓으면 늙어서도 아는 바가 있게 될 것 아니겠는가?

농부가 가을에 가장 기뻐한다. 추수, 결실 때문이다. 농부가 봄에 밭을 갈지 않았더라면 가을에는 무소망(無所望)으로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젊을 때 배워놓지 않으면 늙어 무소망(無所望)으로 슬퍼지게 되니 부지런히 배움에 임해야 한다. 전심전력해서 배움에 임하여 진보를 나타내야 한다. 그래야 나이 들어 기쁨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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