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5 (금)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좋은 수업의 달인을 꿈꾸며

텔레비전에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달인’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달인(達人)’은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나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을 일컫는다. 사실 주변에서는 이런 사람이 드물다. 그런데 방송 탓에 ‘퀴즈의 달인’, ‘우리말 달인’ 등으로 ‘달인’이 많이 쓰이고 있다.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생활의 달인’은 비록 소박한 일이지만 그 분야에 평생 동안 전념하고 있어 감동이 있다.

지난 명절에도 제사를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인’이 화제에 올랐다. 그리고 각자 근무하고 있는 분야에서 자신이 ‘달인’이라고 뽐내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인정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화살이 내게로 날아와 ‘수업의 달인’이라는 칭찬이 이어졌다. 이 말에 내가 주춤거리자, 교직에 몸담은 햇수나 그동안 책을 여러 권 발간했으니 충분이 자격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분은 좋았지만, 내가 ‘수업의 달인’인지는 자신이 없다. 혼자서 ‘수업의 달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생물 선생님을 ‘수업의 달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에 들어올 때 교재도 없이 분필만 들고 와서 수업을 하셨다. 선생님은 젊은 외모에 쉴 새 없이 떠들고 나가는 수업 형태로 우리 사이에서 가장 실력 있는 선생님으로 불리었다.

그때의 기억 탓에 나는 교직에 첫발을 딛는 순간 생물 선생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수업 내용을 열심히 암기하고, 책도 없이 분필 몇 자루만 가지고 수업에 임했다. 목에 힘을 주고 밤새도록 암기한 지식을 아이들의 머리에 쏟아 부었다. 덕분에 아이들에게도 실력이 있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그 습관이 나의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쏟아 부은 지식은 이미 참고서에 다 나와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꼼꼼히 암기해서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옹색한 실력을 감추기 위한 최대의 방법이기도 했다.

왜 가르쳐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르고 앵무새처럼 떠들었다. 활달한 기질만 믿고 한껏 멋을 부리는 데만 신경을 썼다. 아이들과 상관없이 내가 아는 것만 가르치고 있었다.

잘못을 깨닫는 순간 엉뚱하게도 내가 싫어했던 수학 선생님이 그리워졌다. 선생님은 흰 머리카락에 가끔 돋보기까지 쓰고 계셨다. 선생님의 수업은 팽팽한 긴장감이 없었다. 행동도 굼뜨시고, 수업 시간에도 진도를 바쁘게 진행하시지도 않아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선생님은 많은 것을 가르치는 데 힘쓰지 않으셨다. 당신이 필요한 것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치셨다. 우리가 모르면 스스로 알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선생님은 입성이 추레하고 초췌한 주름이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외길로 걸어온 내면의 세계는 구김살 하나 없이 깨끗하셨다. 그때 수학 선생님은 우리의 잘못을 호되게 나무라시기만 해서 밉기도 했다. 어렴풋이 생각해보니 수학 선생님은 수업을 유창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읽을 줄 아셨다. 다행히도 내가 제법 나이를 먹고 나서는 수학 선생님이 그리워졌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생물 선생님이나 수학 선생님이 나름대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요즘 말로 ‘수업의 달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수업의 달인’이라 말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우선 ‘수업의 달인’은 규정을 짓기가 애매하다. 방송에서처럼 ‘떡을 썰고, 기계를 다루고, 물건을 만드는 것’ 등은 숙련되면 가능하다. 하지만 수업은 대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수업 상황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변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대상을 데리고 수업을 한다면 달인이 나올 수가 없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교사와 의사를 자주 비교한다. 그렇지만 둘은 달인이 되고 안 된다는 점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의사는 10년만 넘으면 그야말로 전문가가 된다. 눈을 감고도 수술이 가능하다. 의사가 환자를 만나면 달인의 의술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에 교사는 그럴 확률이 낮다. 학생 개인은 성향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다보니 만나는 학생은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지도가 불가능하다. 교사는 아무리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도 학생 앞에서는 늘 초보일 수밖에 없다.

방송 탓에 교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선생님조차도 수업의 달인을 운운하고 있다. 몇 년 하니 학습 내용도 이제 입에서 술술 나온다고 풍선처럼 자만하고 있다. 이 모두가 가르치는 일을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수업을 대학 때 배운 지식을 학생에게 전해 주는 것이 전부하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교사에게 학원식 수업의 달인으로 거듭나라고 주문을 하기도 한다.

수업 상황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학습 동기 유발부터 창의성을 기르는 수업 전략이 필요하다. 수업은 지식을 분석하고, 창조해 내는 능력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수업은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밀어 넣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식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수업의 핵심이다.

달인은 사전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나 ‘통달한 사람’이다. 달인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도달할 수 있는 완결형이다. 그러나 교직은 그렇지 않다. 특히 수업은 교사의 역량보다 학생의 성취 결과에 집중되어야 한다. 수요자 중심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섣불리 ‘수업의 달인’을 운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수업의 달인’은 학생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교육에 헌신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교사에게 ‘수업의 달인’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진행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는 ‘좋은 수업을 꿈꾸는 달인’일 뿐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