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려고요. 영상일기. 그렇게 매일 밤 카메라 앞에 앉았어요. 쑥스럽데요. 말을 할 때고 그렇고 볼 때도 그렇고. 술 취한 모습을 볼 땐 더 그렇고요. 하하"
다큐멘터리를 찍게된 계기를 이야기하는 서울 일신여상 최금영 교사(미술·42)는 정말 쑥스러운 것 같았다. 마치 3년 뒤 미래의 아내에게 줄 영상편지를 비디오로 녹화하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설경구 처럼.
10년 전 그렇게 그는 6mm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하이텔 비디오 창작동호회의 시샵으로 활동(93~97년)하면서 이론과 실기를 차곡차곡 쌓았고, 학교에서는 방송반을 담당했다. 그의 손에 접착제 마냥 꼭 붙어 다니던 카메라가 아이들을 담기 시작한 건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실고생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아이들이 주눅들더군요. 자괴감에 빠져 노력조차 않는 아이들이 안타까웠어요. 용기를 주고 싶었는데 마침 EBS로부터 좋은 기회가 주어졌지요"
2001년, 학교 현장을 방송으로 좀더 현실감 있게 전달하고자 시작된 'EBS 교사제작단'에 뽑힌 것이다. 그의 첫 작품은 6년 전 학교를 졸업한 제자 김현경 씨의 삶을 그린 '여상 졸업 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실업계 고교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그에게는 교사 제작단 2기로 다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작품 '태권소녀 아라'도 같은 맥락이에요. 태권도 여성국제심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고아라(일신여상 1년)를 보세요. 친구들도 그렇고 모두 얼마나 밝고 건강해요. 다큐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실고 아이들을 보는, 실고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주잖아요"
BBC에 방송될 만한 진솔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최금영 교사. 'KBS 현장다큐 선생님'이라는 프로그램의 다큐 주인공이 될 만큼 유명세도 얻었지만, 6mm 카메라를 가만히 쓰다듬는 그의 표정은 처음 영상일기를 찍던 그 때처럼 여전히 쑥스러워 보인다. 그래, 잘 안보면, 안 보이는
게 세상엔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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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사제작단은= 청소년 영상세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고 학교의 현실을 솔직하게 담아낼 수 있는 컨텐츠를 확보하고자, 2001년부터 운영된 제작연수팀이다. 2002년 6월 구성된 교사제작단 2기는 심사용 자체제작 학습프로그램과 영상자료제작 실적, 수상경력 등을 겨뤄 선발된 8명. EBS 편성운영팀 PD로부터의 집중 연수와 전문방송인을 초빙, 기획에서 구성 편집까지 적용된 3박 4일의 합숙연수를 마친 이들이 직접 제작한 다큐 작품이 16일 저녁 5시40분 ‘6㎜로 그린 커다란 세상’을 통해 방영된다.
어떤 작품이 있나= '태권소녀 아라'외에 제7회 인천인권영화제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던 부산 신채초 황영미 교사의 '스케치북', 경기 안양 신성중 이원철 교사의 '우리는 1학년, 수련회를 가다', 대전여상 정찬복 교사의 '아름다운 비행', 부산 동해중 하봉걸 교사의 '장우와 원호의 지난 여름이야기', 인천 문학정보고 최근태 교사의 '꿈꾸는 소녀', 경북 구미초 김현광 교사의 '이제는 말하고 싶다', 강원 횡성 우천중 한석웅 교사의 '뿌리' 등 성장기 학생들의 꿈과 애환을 담은 작품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