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에세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출판 기념 이벤트에 참가하면서 나는 “스타 소설가인 공지영 그녀의 ‘깃털처럼 가볍고 보드라운 매력’을 감싸 안고 싶다.” 뭐 이런 식의 읽고 싶은 동기를 써 넣었더니 운 좋게 책을 받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젊은 시절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그 거대(거대)가 실은 언제나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 우리에게 체험된다는 사실이었다. --- 역사, 지구, 환경, 정치 같은 거대한 것들 보다 풀잎, 라디오 프로그램, 반찬, 세금 같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던 거였다- 「프롤로그」중에서-
아주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깃털처럼 가벼운 일상 속에서 인생의 비밀을 하나하나 깨닫는 기쁨!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듯,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깃털 같은 일상이 모여 삶을 이루고 있다면서 풀어나가는 흥미롭거나 감동적인 이야기 속엔 자주 만나면서 흉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와 수다 떠는 모습을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 되어 바로 곁에서 대하는 듯한 느낌이다. 어떤 때에는 그녀가 자녀와 집안에서 지내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자녀에 대한 애착이나 사랑 표현은 어떤지, 술은 얼마나 자주, 담배는 어떻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니 마치 도둑이 방안에 숨어 훔쳐보는 것처럼 민망스럽기도 하다.
이백만원의 관 값 유무에 따라 희색이 되거나 사색이 되어 지낸다는 버들치 시인,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약초 캐다 드리는 우편배달부, 벌레소리와 관련한 귀신 이야기, 성씨와 관련된 성(姓)희롱, 내 탓 남의 탓에 엉킨 임신녀 유머와 지구본 유머, 인생에 상처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그녀에게 말해 주던 분을 떠올리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마음 속 깊은 상처까지 서슴없이 드러내는 남다른 끼와 문학적 체험의 궤적을 느낄 수 있다. 중간 중간에 그려진 내용에 딱 어울리는 어린이 솜씨 같은 일러스트들도 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렇지만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의 포인트는 '가벼운 이야기들'만은 아니다. 이 책의 가치는 '가벼운 이야기들의 특이함이 아니라 '가벼워지려고 마음먹고서야 가벼울 수 있는' 작가 공지영의 의지에 있는 듯하다. 그녀가 가벼운 이야기만을 바람을 타고 공중에 퍼지는 깃털처럼 비누방울처럼 아주 가볍게 쓰겠다고 부단히 노력했겠지만,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거나 대중의 가슴을 쓸어내렸던 이슈들이 차분하거나 때로는 예리하게 이야기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인기 스타에 필적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이며 전업 작가이면서도 이웃 아줌마 같은 주부이면서 생활인, 가족 구성원을 책임진 싱글맘이라 그런지, 결코 내려놓지 못하는 '무거움'들이 깊숙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만다.
바로 이 같은 점 때문에 이 책은 작가 공지영을 가식 없이 온전하게 드러내는 책이라 생각된다. 제복에 속박당하는 삶이 싫어 수녀의 꿈을 포기했던 그녀. 꼬이는 인생살이에 대해 ‘앞으로는 <인세수입 한 푼 없이 잘사는 법>, 미모가 완전히 망가지고 난 후의 삶>뭐 이런 강연을 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 되지 않을까? 그래야 공교롭게도 그 반대되는 일이 일어날 테니까.’ 라는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이나 ‘내 생활은 깃털보다 복잡한데요.’라는 말에서 그녀가 삶을 헤쳐 나가는 특유한 고품위(?) 생활능력과 관찰력, 유머감각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3월말 현재 베스트셀러 3위였다.
‘소주, 생맥주, 니코틴의 유혹…’ 같은 내용들이 나올 때마다 나는 그녀가 기호식품으로 아주 가끔 즐겨 음미하는 정도에 그치기를, 작가 생활을 영위하는 필수 불가결한 중독 증상이 아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때로는 힘에 벅차서, 혼자의 능력만으론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작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일선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도 급변하는 교육환경과, 지능과 소질이 다른 제자들과 가치관이 다른 학부모를 염두에 두고 매일 매일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다고.
가벼워지자고 다짐하지만, 끝내 진지하고 엄숙한 잔상을 떨치지 못하는 이 책이 그녀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것만 같다. 책을 읽어보니 작가의 의도대로 실없는 농담까지 던져대는 일상의 시시콜콜 구체적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어 공지영 자신의 다짐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한 듯 하다. 수필가의 일기도, 소설가의 소설도 아닌 소설가의 에세이집을 만나 작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던 첫경험으로서의 독서였기에 공지영작가의 매력이나 문학적 특별함을 찾기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