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펼치는 ‘책, 함께 읽자’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 캠페인은 당초 예상과 달리 국민의 호응이 높다. 낭독 장르도 소설과 시를 넘나들고 있다. 낭독자도 작가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교수, 정치가 등으로 다양하다. 거기에 참여하는 대상도 역시 주부, 학생, 직장인까지 또 노숙인들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행사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짓이다. 책 몇 페이지를 읽기 위해 필요 이상의 넓은 장소를 준비해야 한다. 또 많은 사람이 먼 곳에서 오는 수고를 해야 한다. 시간도 많이 소비되고 그야말로 비경제적이다. 언제 어디서나 글을 읽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책을 읽는 아날로그 발상은 웃기다 못해 한심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특별한 것도 없는 행사에 사람이 많이 들끓고, 모임이 들풀에 불길 번지듯 하는가. 사실 책을 읽는 것은 가장 개인적인 행동이다. 책 읽기는 눈으로만 해야 하고 혼자서 하기 때문에 적적하기 이를 데 없다. 반면에 책 낭독회는 문자 언어를 음성 언어로 변환하는 극적인 장면이 만들어진다. 문자 언어가 음성 언어로 살아나서 저마다 가슴에 만들어지는 환상이 있다. 세상일은 함께 나누고 함께 만들면 더 행복해진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감동에 사로잡힌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즐거움이 피어난다.
낭독회는 책 읽기의 새로운 발견이다. 차가운 활자로 나열된 글은 지루하다. 일률적인 활자들은 엄숙한 분위기와 유식함을 뽐낸다. 반면 낭독은 말맛이 있다. 고단한 영혼에 위로라도 안기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낭독자의 감정도 실려 오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문자보다는 목소리를 입고 들리는 이야기가 더 공감을 주고 인간적이다.
우리 민족은 판을 벌이고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한다. 고대 국가 때부터 음주 가무를 즐기는 유전자가 있다. 복잡한 무대도 필요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거기가 무대다. 판을 벌여 놓고 관객과 하나가 되어 한을 씻어내는 것이 우리 문화의 전통이다. 책을 함께 읽는 행사도 이러한 전통의 유산이다.
지금 우리 주변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사회는 갈수록 분열되어 혼란의 길을 간다.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더욱 실망스럽다. 게다가 모두가 빨리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운명인 줄 알고 달려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책 낭독은 마음을 다독거리는 여유를 준다. 천천히 소리 내며 감동을 나누는 책 읽기는 여유가 있고, 분주한 일상의 끈을 놓게 한다.
책을 함께 읽다보면 마음속에 냇물이 흐른다. 책 낭독은 일상에 지친 영혼들이 그 냇물에 몽상의 작은 배를 띄우는 것이다. 세련된 활자나 수식어로 가득한 인쇄체보다 다양한 음성으로 울리는 낭독은 뒤쫓김도 없고 평화롭다. 책 읽는 소리는 고향 마당의 저녁 밥상 위로 후드득 쏟아지는 바람소리 같다.
우리는 디지털이 행복 지수를 높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책읽기 문화가 전국적으로 번지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원시적인 삶의 감각들로 직조되는 경험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아날로그처럼 느껴지는 삶의 방식에도 기대고 싶은 것이 우리의 정서이다. 모두가 바쁘게 달리고 높이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면 남은 것은 공허함뿐이다. 잠시 뒤돌아보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느리게 쉬어가는 것도 삶을 충만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