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장애를 가진 조카아이가 들릴 듯 말 듯 혼자말로 이렇게 중얼거린 적이 있다.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아이는 침묵의 아이였다. 말도 없었고 웃음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할 일만 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는 게임에 몰입했고, 거대한 상상력의 바다로 공상만화를 그렸다. 때론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넣으며 알 수 없는 음악을 만들곤 했다. 무슨 음악이냐고 물으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생각은 하늘을 나는데 말을 잃어버린 아이가 된 것이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인 <놀이방의 코끼리>는 조카아이와 같은 또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아프게 그러나 그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있는 책이다.
정상적인 몸과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장애라는 단어는 나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더라도 당연히 정상아를 낳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자신의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설마 한다. 그리고 부정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한탄하다 현실을 받아들인다.
"아이가 자애를 가지고 있으면, 부모들은 슬픔의 순차적인 단계를 모두 밟게 된다. 처음에는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신새를 한탄하고 슬퍼한다. 부정, 분노, 타협 등등의 사소한 감정적안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일단 현실을 수용하고 나면 아이가 이뤄내는 작은 성취에도 자긍심을 갖고 즐길 줄 아는 부모가 된 것이다."
이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네 살짜리 아이의 아버진인 데이비드 맥도너프가 아이에게 장애를 발견하고 치료하고 돌보면서 느꼈던 소회이다. 이는 맥도너프 혼자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중증이건 경증이건 상관없이 장애아를 둔 모든 부모의 심정이다. 함께 살고 있는 모든 가족의 심정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인간다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의 권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경찰이 휠체어를 밀어버렸다는 사건도 몇 달 전에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장애인을 바라볼 때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다리를 절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과 생각도 정상이 아니라는 편견을 가진다. 육체적 장애를 정신적 장애로 확대 해석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비교는 타인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아를 둔 부모 또한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다른 아이들은 저렇게 밝고 명랑하게 뛰놀고 말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한다. 그리곤 아이를 원망하기도 한다. 세 살 난 뇌성마비 아들을 둔 한 엄마가 쓴 글엔 그런 부모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들을 보통의 아이와 비교하는 것이 나에 대한 고문이었다면, 물리 치료 센터에서 만나는 장애를 가진 다른 아이들과 아이를 비교하는 것도 또 다른 고문이었다. 센터 홀에서 휠체어를 자기 손으로 밀고 가는 10대 아이처럼 언젠가 우리 아들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지는 않을까?"
장애아를 둔 부모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자신이 장애아를 두기 전까진. 또 장애의 고통을 장애를 입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장애의 유형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인다. 처음엔 부모들도 그런 행동에 당황해하고 절망한다. 처음엔 치료하면 좋아지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차도가 있기는커녕 더욱 악화된다. 그때의 부모는 무기력함에 빠진다. 가정생활은 점차 팍팍해지고 부부간의 사이도 멀어진다. 그리고 치쳐간다. 그때 삶을 포기하면 어떨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 속의 부모들은 포기하지 말라고. 그래도 이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라고.
"주저앉고만 싶고 두렵기만 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서 부모로서 무능력한 것도 여러분의 존재가 가치 없는 것도 아니라고. 설사 여러분의 삶에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더 겪느니 아예 죽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는 나약한 생각이 들더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 말은 여섯 살 배기 자폐아를 둔 엄마 로라가 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희망을 가지라는 그녀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책에 많은 부모들이 장애아를 키우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불안장애와 비언어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만 여섯 살짜리 레비의 엄마의 말은 장애아를 두고 있는 부모이건 비장애아를 두고 있는 부모인건 한 번쯤 깊게 생각하고 명심해야 할 말이다.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이 자신의 장애와 싸우는 어린 아이가 그런 아이의 부모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의 마음은 그 아이 외에 그 누구도 모른다. 침묵하고 눈물을 흘리고 고함을 질렀을 때의 그 답답함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가끔 그 아이를 위로해준다고 하는 말들이 상처가 되어 곪게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장애아를 이해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 하나 장애아는 단순히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해야 할 소중한 친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