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김수업 교수는'우리말은 서럽다'라는 책을 통해 일상에서 소외되어가는 우리말의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토박이말의 소중함과 함께 우리말과 남의 말들이 뒤섞여 사용되면서 우리말의 오염된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김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사용되는 청소년들의 말이나 대중가요 속에 언어를 보면 국적 없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말 특히 토박이말 속살 속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말처럼 재미있고 다양함을 가지고 있는 말도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맛있는 우리말을 모른다. 조금만 들어가 보면 재미있고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생소한 딴 나라말처럼 느껴지는 게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런 우리말의 맛을 맛나게 찾아 밥상에 차려놓은 게 장승욱이 쓴 <우리말은 재미있다>이다. 한 사람은 서럽다고 하는데 무슨 재미는 재미? 할지 모르지만 '모도리, 두매한짝, 외목장수, 강다짐, 밀푸러기, 단지곰, 뻘때추니, 사로잠, 시난고난하다' 등을 쉬엄쉬엄 읽다보면 '아하! 이게 이런 뜻이었네.' 하고 무릎을 치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럼 위 제시한 말들의 속뜻을 잠깐 살펴보자. '모도리'는 조금도 빈틈이 없이 야무진 사람, '두매한짝'은 다섯 손가락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고, '외목장수'는 어떤 물건을 자기 혼자 독차지하여 파는 독점 상인을, '강다짐'은 국이나 물이 없이 먹는 밥을 , '밀푸러기'는 국에 밀가루를 풀어 만든 음식, '단지곰'은 무고한 사람을 가둬 억지로 자백을 받아 내는 일, '뻘때추니'는 제멋대로 짤짤거리고 쏘다니는 계집아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그리고 '사로잠'은 염려가 되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바심하며 자는 잠을, '시난고난하다'는 병이 심하지 않으면서 오래 앓다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이다. 이 예문들은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말들이라 생소하게 들리지만 곰곰이 음미할수록 만난 사골 국물맛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말은 재미있다>엔 생소한 언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흔히 쓰는 말들도 들어있다. 지금은 그 말들을 사용하지 않아 점차 사리진다는 안타까움을 주는 말들이다. 몇 개만 보자.
'잡도리, 시침질, 드난, 부사리, 모꼬지, 피사리, 짬, 곰상스럽다'이다.
속뜻을 풀이해보면 '잡도리'는 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단속하는 일을, '시침질'은 바느질을 할 때 천을 맞대어 듬성듬성하게 대강 호는 일을 뜻한다.
사전의 뜻풀이가 아니더라도 아이 좀 든 사람들은 어른들한테 말을 안 들을 때 '허허, 저 놈 잡도리 좀 해야 쓰것구먼.' 하는 소리를 종종 들었을 것이다. '시침질'은 큰 이불을 바느질을 할 때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쓰던 말이다. 지금은 각 가정에서 바느질 할 일이 사라지면서 이런 말들도 먼 옛것이 되어가고 있다.
'드난'은 임시로 남의 집 행랑에 붙어 지내며 그 집의 일을 도와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을 뜻한다. '부사리'는 머리로 잘 황소, '모꼬지'는 놀이나 잔치 같은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 '곰상스럽다'는 성질이나 행동이 싹싹하고 부드러운 데가 있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피사리'는 농작물에 섞여 자란 피를 뽑아내는 일을 말한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피사리를 하는 경우가 없다. 피사리는 나락 모가지가 막 올라왔을 때 주로 많이 하지만 모를 심고 나서도 내내 하는 게 피사리다. 그러나 요즘은 농약으로 다 처리하거나 그냥 놔둔다. 그래서인지 어떤 집의 논엔 나락 반 피 반인 논이 허다하다. 논주인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하지만 피사리 할 만큼 농촌이 젊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피사리'란 단어도 이젠 들어보기 힘들다. 피사리를 하지 않으면서 그 말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책을 읽다보면 '꽃잠'이나 '그루잠', '가풀막'이나 '꽃나이' 등 참 재미있고 정겨운 말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고 해서 딱딱한 사전적 의미만을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토박이 말사전과는 달리 예화나 일화 같은 다양한 말거리들을 풀어놓고 있다. 여기에 관련된 유사한 낱말들을 연결해 놓아 말의 성찬도 즐길 수 있다.
말은 그 나라의 얼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라의 얼이라 하는 우리말들은 점차 생활의 귀퉁이로 내몰리고 찬밥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유명한 가수들이 부른 노랫말엔 온통 영어인지 우리말인지 모를 말들이 난무한다. 그 노래를 듣고 자라는 청소년들이 우리말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함은 자명하다.
여기에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마저 국어 보단 영어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으려 닦달한다. 우리말은 죽어가고 영어는 판을 치는 세상에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재미를 느끼게 하는 책이 있고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잡초 속에서 핀 한 송이 꽃 같다는 생각이다.
한 송이 꽃이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씨앗을 다시 뿌리면 더 많은 꽃이 피듯이 말도 생활 속에서 사람과 사람들이 써야 살아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은 재미있다>도 일상에서 피어날 한 송이 꽃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