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텔레비전에 가수 태진아가 성진우와 함께 나왔다.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태진아가 성진우를 ‘포기하지마’라는 노래로 데뷔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성진우가 인기를 끌자 소속사를 옮겼고, 다시 돌아왔다는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말은 이 방송 저 방송에서 들었고, 인터넷 뉴스에도 기사화되었다. 그 말을 들으니 태진아가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신인 발굴에도 일가견이 있고, 회사 운영도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태진아는 “성진우를 데뷔시킨 장본인은 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화법은 자연스럽지 않다. ‘장본인’은 ‘주로 나쁜 일을 꾀하여 일으킨 사람’을 지칭해서 쓴다.
- 이렇게 되기까지 그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은 김강보였다(김원일, ‘불의 제전’). -그 이듬해 봄, 다시 또 험한 일이 벌어졌는데 마을을 이토록 쑥밭을 만든 장본인인 그 대학생은 그 돈을 쥐고 한번 마을을 나간 뒤 전혀 소식이 없었다(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 이렇게 개탄스러운 정치인, 기업인, 지식인, 국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오늘의 사회를 어지럽히고 희망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본인들입니다(김수환, ‘참으로 사람답게’).
앞의 예문에서 보듯이 ‘장본인’은 나쁜 일을 일으킨 사람이다. 지탄 받아야 할 대상이다. 가수 태진아는 성진우를 발굴했으니 성진우 개인에게도 고마운 사람이고, 대중에게도 칭찬받아야 할 사람이다. ‘장본인’이 이렇게 엉뚱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상상더하기’는 한동안 대한민국 방송가를 강타한 스타 아나운서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뉴스엔 연예, 2010년 1월 19일). -사장은 전기공학과, 미국 아이오와 MBA 출신으로 SK에너지, SK C&C 등 관계사를 두루 거쳤다. 90년대 말 SK텔레콤의 대표 브랜드 ‘TTL’을 만든 장본인(헤럴드경제 경제, 2010년 1월 19일). -이민호는 지난 해 ‘꽃남’ 신드롬을 일으켜 KBS 드라마 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다(스포츠조선, 2010년 1월 19일).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아브라카다브라’에서 선보인 시건방춤을 만든 장본인으로 유명한 전 단장은 티아라의 정규 1집 타이틀곡인 ‘보핍보핍’과 ‘처음처럼’의 안무를 동시에 의뢰 받았다(스포츠조선, 2010년 1월 19일). -캠프를 기획한 조 학무국장은 용호고 교장시절 과학중점학교로 육성하고 조기졸업제도를 도입, 학생들을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에 많이 보낸 장본인이다(경인일보, 2010년 1월 18일).
위 예문에서 ‘장본인’은 어떤 일에서 중심이 되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을 일컫는다. 이때는 좋은 일의 중심 인물을 가리키는 ‘주인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다./그는 이번 일이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
‘장본인’과 비슷한 단어로 ‘주모자’ 라는 말을 쓴다. ‘주모자’는 ‘시위 주모자로 지목되다’등으로 쓰이는 것 처럼 ‘우두머리가 되어 어떤 일이나 음모 따위를 꾸미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이 단어도 ‘장본인’과 마찬가지로 나쁜 일을 일으킨 사람을 지칭한다.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를 암살한 주모자는 이슬람 반군세력과 더불어 파키스탄 정보부, ISI가 지목되고 있습니다(YTN, 2007년 12월 28일). -신라왕과 6부대표가 군사를 일으켜 평정했으며, 반란 주모자에 대한 처벌과 전쟁비용 부과, 기타 유사 촌락들이 법을 따르도록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경북일보, 2010년 1월 20일). -미실이 반란의 주모자로서 군사적 도움이 절박한 상황에서 국경의 군대를 끌어오는 것을 막으며 위기의 신라를 지키는 것은 기존 악인과는 다른 점이었다(PD저널, 2010년 1월 19일).
‘주동자’라는 단어도 ‘어떤 일에 주장이 되어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검찰은 이번 사태의 주동자를 색출해 중징계할 방침이다.’라며 나쁜 일을 불러일으킨 사람으로 쓴다.
-각각 열린 대한어버이연합회 시위와 전국공무원노조의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재판 기피신청 시위의 주동자 입건을 지시했다(경향신문, 2010년 1월 22일). -주동자로 지목 당했다는 그녀는 “나만 차를 따로 태우고 가는데 감옥 가는 느낌,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고 사연을 마무리했다(마이데일리, 2010년 1월 22일). -중무장한 채 권총을 겨누며 주동자들을 체포한 경찰은 폭도들의 공격을 의식한 듯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다 체포한 폭도들을 트럭에 태워 현장을 떠납니다(mbc 뉴스, 2010년 1월 22일).
이처럼 ‘주동자’라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지목받을 때 많이 쓰인다. 하지만 다음처럼 긍정적인 의미, 즉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대북관계를 미국이 좀 신경 쓰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화하고 북미관계가 잘 이뤄지도록 협력하는 주동자 역할을 하길 촉구하면서 불필요한 대북방송 등은 자제하길 촉구한다(네이버 뉴스, 2010년 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