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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신 한 짝

어젯밤에 우리의 주인은 나를 버린 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의 짝과 나는 신장에 덩그랗게 남은 채 꼬박 밤을 세웠습니다. 나는 그 주인이 한없이 얄미웠습니다. 어제 우리를 버리고 간걸 보면 틀림없이 누구 것인지 몰라도 남의 신을 대신 신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신을 잊어버린 사람은 자갈밭 길을 걸으면서 돌부리에 채여서 발가락이 깨어지고, 사금파리에 발바닥이 찢어져 붉은 피를 흘리고 갔을지도 모릅니다. 어쩜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매를 맞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난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내 주인의 나쁜 짓을 낱낱이 일러바쳐 주고 싶도록 우리 주인이 원망스럽습니다. 남을 울리고 골탕 먹이는 그 얄미운 주인의 짓이 한없이 미워서 밤새도록 지나간 이야기를 도란거렸습니다.

우리가 처음 시장에서 우리친구들과 나란히 뉘어져 있다가, 지금까지 우리의 주인이었던 민수에게 팔려 온 것은 지난여름 방학 때였습니다. 우린 시커먼 색깔에 볼품이 없게 생겨서 ‘한국 나이키’니 ‘코리안 워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검정 통고무신입니다. 요즘같이 유명상표만 찾는 세상에 그래도 우리 같은 못난이를 찾아 주는 것은 우리 고장의 아이들뿐일 것입니다. 이렇게 못나고 보잘것없는 우리지만 주인 민수는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팔려 온 우리의 친구는 벌써 너덜이 나서 밑바닥이 없을 정도였고 옆구리도 두 군데나 누덕누덕 기운 자국이 있었으니, 우리는 얼마나 반가웠을지 알 만합니다.








신발장에 외로운 신 한 짝

처음 며칠은 제법 매일 목욕을 시키고 그래도, 댓돌 한구석에 남에게 밟히지 않도록, 잘세워 놓아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이 가지 않았습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도 씻을 줄도 모르고, 그냥 버려둔 채 들어가서 한 짝은 뒤집히고 한 짝은 댓돌 밑에 소나기에 맞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집에 온 지 보름하고 사흘이 지난날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주인 민수는 마을 아이들과 함께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험한 자갈밭과 명감 나무며, 땅 가시나무 같은 덩굴이 엉클어진 사이를 조심성 없이 덜렁거리며 걷고 있는 주인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민수는 우리를 이끌고 산비탈을 지나 봉우리까지 마구 쏘다니더니, 내려오는 길에는 더욱 극성스럽게 우리를 괴롭히려는 듯 대밭을 지나갔습니다. 대나무 등걸이 뾰족하게 깎여 있는 걸 모르고 그만 잘못 딛는 바람에 등걸에 찔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온힘을 다하여 힘껏 감싸주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민수의 발은 찔려서 피가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나는 주인의 발을 보호하려고 감싸다가 그만 옆구리가 쭉 찢어졌습니다. 그제 서야 주인은 나의 고마움을 알았는지 발을 들여다보면서, ‘이런, 발바닥을 찔릴뻔 했구나. 신발이 찢어졌으니 어쩐담......,’

하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살그머니 나를 방으로 들고 들어가서 바늘로 성깃성깃 나의 옆구리를 얽어 메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상처를 입은 나는 점점 푸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비가 오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비라도 쏟아 졌더라면, 나는 벌써 몇 번이나 팽개쳐 버려졌을지도 모릅니다. 용케도 잘 참으면서 나를 끌고 다니던 주인 민수가 나를 버리고 간 것입니다. 여태까지도 잘도 끌고 다니더니 쓸모가 없어지니 팽개쳐 버리고, 남의 것을 신고 갔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주인을 생각할수록 얄미워서 우리는 밤새워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도 엊저녁엔 나의 짝과 함께 있었습니다. 오늘밤엔 이렇게 나 혼자 남고 말았습니다. 같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없이 컴컴한 신발장 구석에 쳐 박힌 나를 찾아 눈짓을 보내주어서 다행입니다. 만약 달님마저도 없었다면 나는 그만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억울하고, 무섭고, 주인 민수가 미워서 한없이 온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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