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학교 전교생은 광주로 도시체험학습을 갔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낙안읍성을 가기로 했었는데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 때문에 부라부랴 행선지를 바꾸었답니다.
원치 않는 비가 오고 있었지만 이미 약속된 버스는 학교 앞에 와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선생님들의 의견보다는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차창에 들이치는 비를 친구삼아 차에 오르던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습니다. 맛있는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하고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은 설렘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지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의 틀을 깨고 체험학습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농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 도시의 번화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생소한 풍경에 질문도 많아지는 나들이 길이었습니다. 우리 2학년은 이번 도시체험학습이 교육과정과 연계가 잘 되어서 매우 뜻깊은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
바른생활 시간에 배우는 교통표지판 알아보기, 교통신호등 지키기를 비롯하여 박물관에 가서 관람 질서를 지키며 조상들의 유물을 보며 신기해했습니다. 비록 우산을 들고 다니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아하던 아이들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우리 반은 문화해설사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듣고 보느라 다리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내 손에 꼭 잡힌 채 연신 "선생님, 재미없어요. 내 손 좀 놓아 주세요. 돌아다니며 보고 싶어요"를 연발하던 아이는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체험학습 보고서를 쓴다면서 차 안에서부터 수첩에 메모를 하던 귀여운 아이들. 전시장 곳곳에서 쓸 게 많다는 아이들을 몰고 다니느라 발이 부었던 그날.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을 다 듣느라 전체 학년 장기자랑조차 놓치고 말았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더듬이가 많이 난 2학년 아이들. 질문이 많은 게 특징인 2학년 아이들과 사는 일은 즐거움과 엉뚱함이 공존합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궁금한 아홉 살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앎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바로 열정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시립광주민속박물관에서는 조상들의 생활모습을 들여다보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생활 풍습을 돌아보며 추억에 빠져서 아이들보다 더 즐거워진 것은 어른인 나였습니다. 불깡통을 돌리던 어린 날이 거기 있었고, 꽃상여를 구경하던 모습도 생각나게 했습니다.
비가 와서 야외 활동은 없었지만 옛 사람이 남긴 발자취를 더듬으며 아이들도 나도 배움의 열기로 가득했던 소풍이었습니다. 박물관을 돌아보며 우리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훌륭하게 자라서 여러분이 쓰던 공책이나 그린 그림, 만들었던 작품들을 모아 저렇게 전시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지요? 그림을 잘 그리는 류재가 우명한 화가가 되면 류재가 그린 교실 작품도 함께 유명해진답니다. 글을 잘 쓰는 선화가 유명한 작가가 되면 선화가 쓰고 있는 2학년 때의 일기장도 귀중한 보물이 되는 거랍니다."
"진짜요? 선생님, 그럼 제가 신은 신발도 보물이 되나요?"
늘 엉뚱한 질문으로 수업 시간을 긴장하게 하는 꼬마 박사인 류재는 그날따라 더 귀엽기만 했습니다. 특히 글감이 풍부해져서 아이들의 일기장이 어느 날보다 더 길어지고 내용도 풍성하여 참 즐거웠답니다.
'빌딩'이라는 단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좋아하는 모습, 다양한 건축물이 건축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축소판으로 만들어져 진열된 민속박물관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며 눈동자가 커지던 아이들의 모습.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생활 속에서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체험학습에서 아이들의 앎에 대한 눈높이는 어른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높아집니다. 관람 질서를 지키려고 목소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모습, 쓰레기를 스스로 처리하는 모습,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배움을 실천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웠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돌덩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조각가의 솜씨에 매료되어 탄성을 지르며 감탄하는 모습은 바로 '앎의 기쁨'으로 터지는 내면의 노래였을 것입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에서 계절의 변화를 배우는 슬기로운 생활, 번잡한 도로를 걸으며 교통질서를 지키는 바른생활, 가져온 음식을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음식의 고마움과 배려를 배웠습니다.
예술품과 민속품을 감상하는 미적체험학습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기르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봄 여행을 한 것입니다. 이제 이 아이들이 더 자라면, 수학여행을 하고 배낭여행이나 해외연수를 하며 새로운 풍경과 시각으로 세상을 향한 소풍길을 스스로 걸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구별 여행자
삶을 소풍처럼 살다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감'으로 여기었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나, '천지란 만물이 잠시 머무는 여관이요, 세월이란 늘 있는 길손이라.(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라고 한 李白의 시를 생각하면 우리 삶은 날마다 소풍인 셈입니다. 소풍나온 삶임을 잠시 잊고 살 뿐이지요.
따지고 보면 인간이 이 우주에 소풍나온 출발점은 우주 탄생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우주 탄생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1년으로 잡는다면 빅뱅이 1월 1일, 은하의 탄생은 4월 1일, 태양계의 형성은 9월 9일에 일어난 셈이 된다고 합니다.
이후 12월 19일에 최초의 어류가 탄생하였고 12월 28일에 공룡이 절멸하였으며 인류의 역사는 모두 12월 31일 밤 22시 30분에 시작되었답니다. 1년의 세월 중 불과 1시간 30분간을 인류가 우주에 존재해 온 것이라고 하니 어찌 인간만이 이 우주의 주인인 것처럼 살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 개개인의 삶이 220일 동안 학교 생활 중에서 하루, 이틀 나가는 소풍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도시체험학습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져서 나 아닌 다른 동물과 식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우물안 개구리의 삶을 벗어나 보다 너른 인식의 단계로 도약하여 지혜를 갖추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너무나 거창한 바람일까요?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결실을 이루고 되돌아가는 것이 하늘의 법칙임을 떨어진 단풍잎이 보여주고, 어려움을 이기고 피어난 꽃을 보며 자연은 위대한 스승임을 배웁니다. 체험학습을 다녀온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글과 그림을 곁들인 체험학습보고서를 쓰게 합니다. 체험학습을 다녀올 때마다 한 뼘씩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영혼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날마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호기심의 더듬이를 돋우고 학교 생활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침의 방법을 늘 생각해야겠습니다. 새로운 건강체조 하나만 가르쳐 줘도 재미있다며 또 하자고 조르는 이 아이들처럼 나도 날마다 감동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날마다 소풍 가는 아이들 마음으로 아이들처럼 살 수 있기를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봅니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소풍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