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마침 최재봉의 '언젠가 그대가 머물 시간들'을 읽을 기회가 있어 세월과 환경이 각각 다른 다양한 소설 속 사랑풍경을 엿보게 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1. 겹눈의 사랑 외 7편이 소개된 ‘그렇게 너는 나를 지나갔다. ’
2. 2천5백만 년의 약속 등 6편이 실린 ‘순정과 욕망의 교차로.’
3.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이상의 봉별기 등 6편이 실린 ‘매혹하는자, 갈망하는 자.’
4. 사람 마음을 이렇게 모르냐 외 6편이 소개된 ‘아득해서 아름다운.’
5. 사랑은 미친 짓이다 등 7편을 소개한 ‘이것은 왜 사랑이 아닌가?’
이렇게 구성된 이 책의 한국 소설 32편을 읽어 보면 “사랑이 무엇이라는 연역 대신 ‘이런 것이 사랑’이라는 예시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귀납해 가는 방법을 택했다고나 할까”라는 저자의 말을 기억하게 된다.
저자가 바라본 문학작품엔 권력과 복종이 사랑의 숨길 수 없는 일면이라는 사실도 보여 준 '경마장 가는 길', 맘에 드는 서방질은 부정한 일도 죄도 아니라는 직업적 사랑 '뽕', 닿을 수 없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을 향한 조바심도 사랑이 될 수 있는 '화장', 고통과 사랑의 강도가 비례하는 무시무시한 사랑이자 복수로서의 사랑인 '먼 그대', 재혼부모 때문에 오누이가 된 애절한 남녀의 사랑 '젊은 느티나무',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서부터 이별을 하는 과정까지를 냉정하게 서술한, 그리하여 저자의 말처럼 낭만적 사랑에 똥침을 날리는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연애는 빛과 영광만으로 가능하지만 사랑은 어둠과 치욕까지 끌어안아야 하므로 책임과 의무까지 떠안아야 하는, 사랑은 단순히 ‘완성’으로 귀결되지 않음을 말한 '마른 꽃' 등 저자는 서로 다른 재미를 지닌 한국 대표 소설의 ‘사랑’ 세계로 안내한다.
본 리포터는 청소년시절 한때 알다가도 모를 시(詩), 시를 쉽게 이해할 수는 없을까 하고 시인들의 자작시 해설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부제목이 말해 주듯이 이 책은 저자가 선정한 소설들을 통해 우리문학의 ‘서른두 개의 사랑 풍경’을 이해하기 쉽게 친절하고 흥미롭게 보여준 의미 있는 안내서였다고 생각 한다.
<언젠가는 그대가 머물 시간들, 최재봉 지음, 한겨레출판(주), 초판1쇄 2011.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