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서의 행복한 날들 - KE2851기를 타고 공중 부양하다
대한항공 KE2851기가 김포공항의 활주로를 박차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무려 500톤의 쇳덩이가 가뿐하게 공중부양 하는 모습을 보며 현대과학의 경이로움에 다시 한번 전율을 느끼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무사히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앉은 것을 확인한 뒤, 필자도 자리에 앉았다. 내 좌석 번호는 42B번으로 창가 쪽이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만족해야 했다.
등받이에 어깨를 묻자 갑자기 나른한 피곤함이 엄습했다. 아침 비행기를 타려고 새벽 4시부터 서둘렀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좌석에 기대어 졸았는가 싶었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졸린 눈을 비벼보니 아리따운 스튜어디스가 기내식을 배식중이었다. 마침 출출하던 차에 이게 웬 횡재냐 싶다. 옆에 앉은 경빈이는 벌써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기내식을 해치우고 또다시 입맛을 다시고 있다. 양이 적은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자 스피커에서 기장의 낭랑한 안내 멘트가 흘러나온다.
"이 비행기는 현재 김포공항을 출발 북경공항에는 10시 30분에 도착할 예정이며 한국과의 시차는 1시간이 되겠습니다. 현재 고도는 3000m이고 속도는 시속 820km가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저의 직원 일동은 항상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아, 잠시 후면 중국 대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수학여행을 통해 북경의 생생한 모습과 명·청나라 황제가 살았다던 엄청난 규모의 자금성과 이화원, 천안문광장, 달에서도 보인다는 유일한 건축물인 만리장성 등을 관람하며 중국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서령고, 드디어 북경을 접수하다
1800만 명이 북적대는 북경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비릿하면서도 마치 절간에라도 온 듯 향내가 코를 찔렀다. 오랜 여독과 멀미로 속이 메스꺼운 상태에서 생소한 음식을 대하니 몹시도 당황스럽다.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도 나와 마찬가지인 듯 식당 옆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녀석들의 얼굴을 보니 벌써부터 집 생각이 간절한 눈치다.
중국은 '다리'여행이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다시 현지 관광버스에 올라 천안문광장으로 향했다. 천안문광장은 중국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잘 알려진 곳으로 가끔 텔레비전에서 본 곳이기도 하다. 처음 대하는 천안문광장은 그렇게 큰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갔을 때는 한창 공사 중이었고, 대형 모택동 주석의 사진만이 휑뎅그렁하게 걸려 있을 뿐이었다.
천안문광장에서 간단하게 호차별로 기념사진을 찍고 가이드의 뒤를 따라 자금성으로 향했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자금성은 198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방 수가 무려 9999칸이라고 한다. 1만 칸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1만 칸은 오직 하늘의 옥황상제만이 가질 수 있는 상수이기 때문이란다.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일명 9999 개의 방(실제로는 8707칸이라고 한다.)이 배치되어 있다. 자금성의 주위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자와 성벽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해자의 너비는 52m이며 깊이는 6m에 이른다. 해자에는 동서남북으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가 있다. 궁궐 주위의 장벽의 길이는 3km에 이르며 높이는 10m이고 4개의 큰 출입구가 뚫려 있다.
이 같은 엄청남 건물을 짓기 위해 고생했을 당시의 백성들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황제의 진정한 선정은 무엇일까? 황제가 거처하는 궁궐이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백성들의 삶이 결코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황제의 거처가 작고 소박할수록 백성들의 행복지수는 올라갈 텐데…. 생각이 깊어질수록 나그네의 마음은 자꾸만 착잡해진다.
악, 전갈꼬치요리를 시식하다!
오후 일정은 왕부정거리 체험이다. 중국에서 '府'자가 붙으면 높은 벼슬아치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왕족들만이 살던 거리라 해서 '왕부정'이란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은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변해 옛날의 영화를 다시 살린 셈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강남이나 압구정 정도에 해당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부정은 거리마다 수많은 먹거리 상인들로 가득 채워진 곳으로 필자가 중국에 와 있음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곳이다. 비행기와 의자만 빼고 먹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나와있는 듯했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협오감을 느끼는 지네와 전갈요리가 유독 많았다. 상인 대부분은 간단한 우리말을 구사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거리에 오가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우리 한국인들이었다. 북경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왕부정거리이기 때문이란다.
용기를 내어 전갈꼬치요리를 먹어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생각보다 꾀 고소하단다. 아이들의 놀라운 비위에 감탄, 또 감탄하는 순간이다. 선생님도 드셔보라고 내미는 통에 혼비백산 도망쳐야했다. 거리를 걷다보니 반가운 로고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삼성이란 간판이었다. 북경시내 왕부정거리에서 반짝거리는 삼성마크를 보니 참으로 반갑다. 애국심이란 크고 거창한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사소한 마음이 아닌가 싶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