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정거리를 걷다보니 시나브로 날이 저물고 있다. 사방에 땅거미가 지고 북경의 야경이 하나 둘 점멸하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 우리 일행은 북경에 들르면 반드시 먹고 간다는 '베이징덕(북경오리구이)'를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해 식단을 찬찬히 살펴보니 외국의 정상들도 다녀간 곳이라 적혀있다. 그만큼 유명한 집이라는 자랑일 테지만, 막상 음식을 시식해보니 급 실망! 우리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고기에서 노린내가 너무 심해서 비위가 상했다. 겨우 한 점을 먹고 고량주로 입가심을 한 뒤 식당문을 나섰다.
아시아의 뉴욕, 북경
북경의 거리는 이제 완연한 야경이다. 마치 서울의 어느 거리를 걷고있는 느낌이다. 북경의 거리를 보니 무늬만 사회주의이지 내용은 완전한 자본주의란 생각이 들었다. 거리 곳곳에 CF화면이 난무하고 화려하고 현란한 네온사인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바야흐로 아시아의 뉴욕이란 느낌이 들었다.
7시 50분부터 시작되는 북경 천지서커스를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현지 가이드의 재촉에 우리는 병아리가 어미 닭을 따르듯 가이드의 뒤를 졸랑졸랑 따라 서커스장에 도착했다. 북경의 천지서커스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기예단이라고 한다. 천지서커스를 보며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야구공 아홉 개를 가지고 하는 저글링은 신기에 가까웠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으면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경외감마저 들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 황제도 무릎을 꿇다
현장체험학습도 어느새 이틀째로 접어들었다. 아침 일찍 여장을 준비해서 '기천단'으로 향했다. 기천단은 하늘을 상징하는 사당 건축물로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들이 매년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수 백년씩 된 아름드리 향나무들이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나 할까. 곳곳에는 하늘과 땅과 백성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중국 역사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이 없는 황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천단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600살이나 되었다는 향나무를 알현하고 밖으로 나오니 이글거리는 북경의 태양은 한풀 꺾여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 일행이 도착한 곳은 용정화호텔이었다. 호텔의 크기는 우리나라의 5성급 호텔규모로 객실이 100여 개나 되었다. 현지 수준으로 4성급 호텔에 속한다고 한다. 객실은 비교적 정갈하고 인테리어 또한 잘 꾸며져 있다. 첫날 샤워기가 고장난 것을 빼고는 모든 시설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호텔 주변에는 대형마트와 KFC, 맥도널드 등의 상점이 위치하고 있어 밤 시간을 이용해 간단한 쇼핑도 즐길 수 있다.
이화원과 세계 7대 불가사의 만리장성
북경여행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과 '만리장성'이었다. 이화원은 청나라 서태후가 1764년 백성들을 동원해 직접 조성한 인공호수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원내는 궁정구, 전산 전호구, 후산 후호구 등 세 개의 경치구로 나뉜다.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 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과 유람을 하던 곳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회랑식 복도는 그 길이가 무려 800m에 이르며 곤명호를 파낸 흙으로 거대한 산을 만들었다니 당시 인부들의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 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이화원 안쪽에 '낙수당'이란 서태후 침실이 위치해 있었다. 낙수당은 서태후가 유람차 머물던 행궁으로 이곳에 수많은 미소년들을 불러들여 하룻밤 노리갯감으로 삼은 뒤 다음 날 비밀유지를 위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렸다니 서태후의 잔인함에 새삼 전율이 인다. 결국 서태후는 이화원 공사로 인해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어 멸망을 초래하게 되니 인과응보의 법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평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