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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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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 1990년 학급담임으로서는 마지막이었던 해. 난 이 반의 아이들과 실체로 이런 약속을 하였다.
그날이 언제 이이며 이루어질 날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몇몇 아이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소식을 몇년 전까지도 전해 들었던 약속이다.

이루어질날을 기다리는 약속

우리는 오늘로 우리 선생님과 헤어져야 합니다.지난 봄에 우리학교로 발령을 받아서 오신,우리 선생님이 벌써 우리 학교를 떠나시게 되었습니다.겨우 일년이 되셨는데,다른학교의 교감 선생님으로 발령이 나셨다고 합니다.

5학년이 되어서 첫날에 우린 새담임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습니다.그런데 앞에 주욱 늘어선 새로오신 선생님 20여분 중에서 우리 담임선생님은 몸매도 보잘것 없고 별로 잘 생기지도 않은 모습의 남자이셨습니다.더구나 나이가 꽤 들어 보이셨습니다. 우린 속으로 ‘에이, 나이도 많은 남자 선생님이잖아’하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우리는 그게 잘못 생각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한달이나 걸렸습니다.처음에 우리 담임 선생님은 어찌나 무섭게 하는지 아이들이 선생님의 곁에 가 볼수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반은 무엇을 하던지 우리가 해야할바를 꼭 지키는 반이 되도록 합시다.공부할때는 부지런히 공부하고,놀때는 아주 철저히 잘 놀수도 있도록 합시다.”하고 말씀하신 선생님은 그날 공부가 시작이 되기도 전에 벌써 우리들을 교실에서 지켜야할 기본질서를 말로 하시는 게 아니라 직접 해보도록 시키면서 하나하나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5학년이나 된 우리들을 교실에서 걷기부터 복도에서 걷기, 일어서서 자기 소개하기,과제를 정확히 하기 위해서 날마다 가정통신문 쓰기,그리고인사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른반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도 우린 이제 1,2학년과 같은 질서,인사 같은 것을 배우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내일 준비할것을 알려 주겠습니다.첫째,일기장,이것은 일기공책이 아닌 그냥 무제 공책을 사오세요.그리고,오늘부터 일기를 쓰는데,오늘은 한쪽을 모두 써가지고 오세요.특히 오늘 선생님을 만난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기 바랍
니다. 다음으로는 임시 시간표에 의해서 공부할 준비를 해가지고 오세요” 하고 청소를 시키시는데,여기저기를 잘하라고 시켜 주셨습니다.우리들은 지금까지 청소하던것과 같이 교실 청소를 하였습니다.

청소가 거의 끝나자 임시반장을 맡은 영일이가 선생님께 다가가서 “선생님 청소 다 했는데요 ?”하고 여쭈었습니다.지금까지 일에 쫓겨서 우리들이 청소를 하는 것을 바라보지도 않으시는것 같던 선생님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시더니 “너희들 이렇게 하고서 청소를 다했다고 하는거냐 ? 청소는 왜 하는 것이지? 어디 반장이 한번 얘기 해봐.”

이 말을 들은 반장 영일이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아뭏소리도 못하고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얘기 해봐 !”

다시 말씀이 떨어지자, 영일이는 쭈뼛거리면서
“예,더러운곳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 ? 그럼 지금 더러운 곳을 깨끗이 청소하였을까 ?”
“예.”
“자 그럼 이제부터 정말 더러운곳들을 찾아서 정말 청소를 하겠다.함께 보기로 하자” 하시고선 앞장을 서서 교실 앞으로 나가셨습니다.맨먼저 칠판의 위와 칠판밑의 백묵받이를 손가락으로 쓸어 보여주셨습니다.선생님의 손가락에는 허연 먼지가 듬뿍 묻어나왔습니다.
“이거 보여 ? 여긴 청소도 안했지 ?”
이어서 유리창틀,교실 뒷쪽의 진열대 위,진열대 밑의 여러가지 물건들을 몽땅 쓸어 내어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죽어라고 열심히 청소한 교실바닥은 한번 보시지도 않았습니다.복도의 신발장에서도 흙은 수북히 나왔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 청소는 아무 쓸모가 없이 전부 다시 청소를 하여야 하였습니다. 교실 구석구석을 차근차근 비질하고,닦고 털어내고 해서 청소를 마친것은 두시간이 훨씬 더 걸려서 였습니다.

“자, 이젠 되었어요. 앞으로 우리반의 청소는 이렇게 더러운곳을 찾아서 구석구석을 청소하기로 합니다.내일부터 청소를 검사 받을때는 이런곳을 확인할 것입니다.바닥이야 항상 보이는 곳이지만 오히려 이렇게 안 보이는곳,손
길이 잘 가지 않는곳을 깨끗이 청소하도록 합시다.”하시고선 우리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야 ! 고생문이 훤하다.다른선생님들은 처음에 우리들에게 잘 해주시려고 애를 쓰셨는데,우리 선생님은 처음부터 아주 엄하게 다루시는게 올해는 편하지 않겠는데….”하고 투덜거렸습니다.

정말 우리들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어느 한가지라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이 없으셨습니다.일기장도 일일이 읽어 보시지는 않지만 썼는지를 한사람도 빠짐없이 검사를 하셨습니다.
“일기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읽어 보지는 않겠다.그러나,날마다 썼는지는 꼭꼭 확인 할테니까 앞으로 빠짐 없이 쓰도록 한다.그대신,일기를 많이 쓰지 않도록 날마다 가정통신을 쓰는 그 아랫쪽에 쓰는데 아마도 15에서 17줄 정도가 될것이니까 이것만은 채워서 쓰도록 합시다.적어도 15줄은 써야 일기를 쓴것으로 해주겠어요.그리고,일기에 날마다 검사를 받아 오세요.일기 검사를 받는것이 아니라, 가정통신을 여러분의 부모님이 보실수 있도록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정통신 아래다 부모님의 도장을 받아오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찍어준 도장에 부모님이 도장을 찍을 자리가 있지요.”

이렇게 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확인하시고 만약 일기를 안써온 사람은 이마에다가 도장을 꽝 찍어주시곤 하였습니다.우리들은 어쩔수 없이 날마다 일기를 쓰지 않을수 없게 되었습니다.공부시간에는 정말 꼼짝을 못하게 공부에 따라가지 않을수 없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잠시도 한눈을 팔수 없도록 선생님은 우리들을 끌고 가셨습니다.잠시만 딴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선생님의 눈에 띄여서
“정길영, 답이 무어지 ?”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지금까지 설명하시던 것과는 아주 엉뚱한 것을 칠판에 써놓고서 몸으로 가리고 서서 질문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분수를 배우는 시간에 연산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던 선생님은 칠판에
'3+4='
이라고 써놓고서 몸으로 가리고 서셔서 물으시는 것입니다.길영이는 멍하니 일어서서 대답을 못하고 있습니다.아이들은 짓궂게
“37 !”
“45 !”
하고 엉뚱한 답들을 대주는 것입니다.

눈치 없이 이게 정말인줄 알고 그대로
“45 !”
하고 대답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와,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그만 대답을 한 길영이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렸습니다.그만 아이들에게 큰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이런것은 대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걸리는게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학급의 대표나 부장들이 더 자주 걸렸습니다.
“그것 봐 ! 넌 모르지 ? 그럼 명준이 말해봐 !”
선생님은 학급에서 비교적 공부를 잘 못해서 지금까지는 꾸중꾸러기 노릇을 하던 아이를 지명하셨습니다.
“네, 7입니다.”
“그렇지 ! 봐라 길영이 ! 명준이는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있으니까 알잖아 !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안 듣고서는 알수 없는 거야. 알겠어 ?”하고 말씀을 하시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그만 기가 팍 죽어서 조심을 하게 됩니다.

첫주가 지나기도 전에 우리반에는 새로운 명물이 하나 생겨 났습니다.학급신문인데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이 신문은 선생님이 기본틀을 만들어 주시고선 처음 몇주간은 학급에서 대표 몇사람을 데려다가 만들게 하셨습니다.몇 주가 지나고선 분단별로 만들게 해주셨습니다. 한 분단 12명이 8면을 모두 채워야 하니 단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됐습니다. 글짓기에서 만화까지 논설문부터 시,꽁트,우스게소리 등등 우리들이 마음껏 재주를 부릴수 있는 곳이 이 학급신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반에서는 누구나 재미난 이야기를 찾아 나섰습니다.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늘 적어 두었다가 글로 써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반은 그 학급신문을 적어도 단 한 주일도 쉬지 않고 꾸준히 낼수 있었습니다.일년 열달 동안에 단 한 주일도 쉬지 않고 만들어서 우리 학급의 아이들 모두에게 주고,5학년 다른 학급에도 모두 한장씩을 돌렸습니다.

우리반의 또하나의 특징은 쉴시간이면 너무너무 시끌벅적한 것입니다. 쉴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열명 안팎으로 모여 둥글게 둘러 앉아서,손뼉을 치면서 하는 놀이를 시작 합니다.
“시장에 갔더니,시금치도 있고.”
“시장에 갔더니,시금치도 있고,알타리도 있고.”
“시장에 갔더니,시금치도 있고,알타리도 있고,수박도 있고......”
이렇게 이어가는 곳도 있고,다른 한쪽에서는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를 외치고,또 한군데선
“소발,말발.”
하며,박자를 맞추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철수,영숙 좋아.”
“영숙,철수 싫어 !”
하고 신바람을 냈습니다.

교실 안 7~8군데서 이렇게 소리들을 지르고 있으니 교실안이 엉망으로 시끄럽고 와글와글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아이들의 표정은 신나고 정말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가끔은 선생님도 함께 어울려 주시기도 합니다.이렇게 즐거운 교실은 다른교실처럼 아이들이 싸우는 일도 없고,장난을 치다가 다치는 사고도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선생님과 여러가지의 약속을 서로 지키는 생활을 하였습니다.공부시간에도 손가락으로 여러가지의 표시를 합니다.손가락 하나를 들면
“동작 그만 !”
하고,온 교실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이렇게 여러가지 신호가 있습니다.손을 들때도 손가락으로 자기의 뜻을 표시하고 선생님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우리들 모두가 따라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이렇게 처음에 우리가 만났을때와는 달리 우리 선생님은 남보다 훨씬더 우리들을 아껴 주시고 바르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발령이 나기 전에 우리들과 꼭 지키자고 한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같이 공부를 하고,오늘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이제 헤어지면 우리들이 언제 또 만날수 있을런지 모릅니다.그래서 나는 너희들과 한 가지 약속을 하고 싶다. 너희들도 지킬수 있겠지 ?”
“예,무슨 약속인데요 ?”
“난 너희들에게 언제가 될런지 모르는 약속을 하고 싶다.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을 약속하자.”
“언젠지도 모르고,어딘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만나요 ?”
“자, 그럼 우리 약속을 하자. 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나서 그 일주년 기념일에 우리들이 꼭 다시 만나자.그게 10년이 되거나, 2,30년 후가 되더라도 말이다.그때 우리는 임진각의 통일기원비 앞에서 만나자. 너희들중에서 단
한 명이 이 약속을 지키더라도 난 꼭 그 자리에 가겠다.”
선생님은 이런 약속을 남기시고 우리 한사람한사람의 손을 잡아 주시면서
“자 ! 우리 열심히 살자 !”고 다시 다짐을 해주셨습니다.이런 약속을 한 우리는 하루 빨리 통일의 그날이 와서 우리들이 얼마나 달라졌을런지 모르는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약속이 언제 이루어 질런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약속이 언젠가 반드시 지켜지리라 믿고 기다리고만 있습니다.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소망인 이날을 기다리며,과연 그때에 우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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