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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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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사람을 남기는 최상의 직업

'갈' 것을 생각하라는 '가을' 앞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요즘과 같은 계절을 가장 힘들게 보내곤 했다. 가을 들판이 비어가고 나무들이 옷을 벗기 전까지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해당되는 시기이다. 내 인생의 사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짧은 가을이 서러워서이다. 차라리 나목을 보거나 빈들을 보는 것은 아프지 않으니 다 이루어내고 쉬고 있는 그 여유가 편안해서다.

'가을'이라는 명사를 누가 지은 건지는 모르지만 정말 잘 지은 이름이다. '갈'것을 생각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이 담겨있으니! 그러니 가을은 중년의 계절이 아닐까 한다. 일할 만큼 일하고 달릴 만큼 달리고서 결승점을 향해 숨고르기를 하며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갈무리하는 중년의 시기와 닮았다.

가을, 외롭고 고독한 감정은 당연한 것

가을이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갈'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한다.이 때의 고독과 외로움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성숙한 자아상을 키우게 한다. 그러니 가을을 잘 보낸 사람은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면서도 슬프거나 좌절하지 않을 힘을 얻는 것이다. 모든 성공 뒤에는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인생의 여정을 삼 단계로 축약해 놓았다. 첫 여정은 죽은 자들과의 교류로 시작하라며 죽은 자들이 남긴 좋은 책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라는 뜻이다. 특별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알 듯하다.

그에 따르면 인생의 두 번째 여정은 산 사람들과 보내면서 세상의 좋은 것을 보고 느끼라고 했다. 인생의 세 번째 여정은 자기 자신과 보내라고 했으니, 이 마지막 행복의 비결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관조하고 사고하며 살아가는 데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을은 인생의 세 번째 여정을 즐기며 관조하기 좋은 계절이다. 인간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내 몸에서 느껴지는 현상이 계절과 함께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가을을 주신 신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할 뿐이다.

내가 거둘 것에 확실한 책임을

일본의 정치가이자 의학자였던 고토 신폐이는, 돈을 남기면 하수, 업적을 남기면 중수, 사람을 남기면 상수
라고 했다. 그의 말을 거울삼아 내 모습을 비추어 보면 사람을 기르는 교직에 종사하고 있으니 약간의 위로가 된다. 다만 1년 동안 가르침으로만 끝나는 관계라면 결코 상수 축에 끼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교직은 돈을 남기는 업도 아니요, 업적을 남기는 업도 아니니 필수적으로 사람(제자)을 남기지 않으면 큰일이 아닌가! 하수 축에도 끼지 못할 테니 말이다.

과연 나는 올해 맡은 아홉 명의 아이들을 교훈으로 가르치고 감동으로 길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물음에 자신이 없다면 남은 두 달 여 동안 온 힘을 다하여 그 동안 다하지 못한 책무를 온전히 끝내서 100%의 열매를 거두는 데 힘쓸 일이다. 아이들 하나하나 각기 다른 특성과 재능을 찾아주며 칭찬하고 격려하며 등대 역할을 마쳐야 한다. 비록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진로지도까지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린 나무일 때 특성을 알아서 미리미리 가위질을 해주고 버팀목이 필요한 아이는 지지대를 세워 주어야 함을 놓치지 말 일이다.

사람들은 가을 여행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가을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밖으로 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나의 내면으로 가는 여행이 먼저라서 그렇다. 언제쯤 편안하게 단풍 구경을 하며 가을 여행자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을까? 하릴없이 따스한 가을 오후의 햇볕에 몸을 맡기고 차창을 스치는 가을 풍경을 생각 없이 여행하고 싶다.

그 날을 위하여!
스스로를 위하여!
가을처럼 아름답게 살기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그리하여 교단에서 내려서는 그날까지
사람을 남기는 최상의 직업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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