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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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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지금은 학년말, 가르칠 것이 없다구요?

학년말을 맞아 선생님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힘들다. 업무적으로는 성적처리,생활기록부 작성, 사정회 준비 등으로 눈코뜰새 없는데다 아이들 생활지도 문제까지 겹치기 때문이다. 교원 업무경감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해야할 일은 줄어들지 않고, 날마다 맞닥뜨려야 하는 아이들은 또 오죽 거칠고 복잡한가! 선생님 말씀 가벼이 아는 것은 기본이고 비뚤어진 극소수 학생들의 경우 지도에 순응하기는 커녕 눈을 부라리며 대들기 일쑤니 말이다. 그래 무심결에 내뱉는 "선생 노릇 못해먹겠다."는 말이 단순한 푸념으로 들리지 않고 교육의 위기로 느껴지는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성 싶다.

학교장으로서도 학년말은 힘들다. 교과서 중심의 교육과정을 거지반 마친 선생님들이나 기말 시험을 마친 아이들 모두 조금씩은 긴장들이 풀려 해이될 수밖에 없는 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교실 이곳저곳의 흐트러진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그리 유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작종이 쳤는데도 복도를 서성이는 학생들, "선생님, 우리 공부 다 했으니 그냥 놀아요."하면서 선생님을  유혹하는 학생들 앞에서 "그럼 이 시간에 우리 비디오나 한편 볼까?"하며 학생들의 꼬임에 넘어가는 선생님. 어쩌면 좋을까. 그냥 내버려두자니 교육과정이 파행으로 운영될게 뻔하고 일일이 간섭하자니 잘하고 계시는 다른 선생님들 부담드릴 것같고.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선생님들 가운데 일부는 교과서를 끝내고 나면 가르칠 것이 없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는다는 점이다. 어느 학교나 정해진 교육과정 안에서 수업일수와  법정 시수를 다 채워야 하는 것은 상식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일수와 시간을 채웠다는 의미의 교육과정 이수가 아니라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만큼 제대로 배웠는가 하는 교육내용의 충실성일 것이다. 학년말에 교과서가 끝났다고 해서 졸업식이나 다음 학년도 진급시까지 아이들을 아무렇게나 방치한다면 교육의 무한책무성으로부터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을 가르친들 어찌 가르칠 것이 없겠는가. 국어시간 같으면 일정한 주제를 놓고 토론수업을 해볼수도 있고, 평소 수업시간에 못했던 문학작품 쓰기를 시도해서 일대일로 지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바른 심성함양을 고민한다면 부모님께 또는 스승님께 감사편지쓰기도 좋을 것이다. 영어시간은 또 어떤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필수적으로 익혀야될 기본단어와 핵심문장들을 중심으로 이미 배운 내용을 반복학습을 해도 좋을 것이고 아름다운 영시 한편씩을 놓고 감상하고나서 각자의 생각을 발표하게 할 수도 있다. 과학시간이라면 생활속의 과학을 주제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각종 원리를 공부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음악시간이라면 명곡 감상을 중심으로 해서 위대한 음악가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도록 힘쓰고, 체육시간이라면 그절히 않아도 약해빠진 아이들의 기초체력 향상을 위해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가벼운 일상운동을 습관화되도록 해주면 오죽 좋을 것인가.

왜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만 교육이고, 교과서 밖의 다양한 체험과 인식, 폭넓은 인간관계의 형성, 예술적 감상이나 향유는 학교가 신경안써도 되는 일쯤으로 생각을 하는지! 얼마전 신문보도를 보았더니, 학년말을 맞아 공부를 놓아버린 초6, 중 3, 고3 학생들이 학교에서 매일 감상하는 비디오가 하루 3~4편이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이 방치되고 더 심화된다면 교육의 공동화 내지는 학교의 무력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가르칠 것은 많은데 가르치기가 싫다면 모르겠지만, 가르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에 아이들에게 피가되고 살이 될 '가르칠거리'가 너무너무 많다면 지금의 수업일수나 과목별 이수 시간은 남기보다 오히려 부족하다 해야 맞을 것이다. 필자도 한때 학부모로서 자녀를 학교에 보냈고 여러번의 학년말을 보냈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집에 와서 하는 말을 떠올리다 보면 내가 교육자임이 참으로 부끄러워졌던 기억을 지금도 갖고 있다. " 아버지, 학교가서 날마다 몇시간씩 비디오 보기가 질리는데 어떻게 하죠?" "네가 읽을 책을 준비해 가서 조용히 책이라도 읽으렴." " 아버지도 참, 아이들이 나보고 잘난 척 그만 하라는데 어떻게 나 혼자만 책을 읽어요!" "......"

누가 뭐래도 교육은 서비스 아닌가. 그렇다면 학교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최상의 서비스, 품질높은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교육자로서 학년초 학기중에 열심히 가르쳤다면 학년말에도 똑같이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풀어지지 않고 스스로를 다잡아 다음 학년을 준비하고 상급학교에서 필요한 바른 배움의 태도를 기를 수 있다. 아이들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교육, 학부모들이 두고두고 선생님을 고마워할 수 있는 교육. 지금 우리 교육은 이것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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