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요즘 학생들도 스승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까?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스승하면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던 선생님들의 면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사는 이 시대의 교실에서 선생님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 시간이 싫었던 아이가 있었다. 미술 시간만 되면 오늘은 정말 잘 그려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아이의 그림은 한 번도 뽑히지 못했다. 내 그림은 왜 잘 그린 그림이 될 수 없을까? 나는 정말 그림에 소질이 없는 걸까? 그런 물음과 함께 아이는 친구들의 잘 그린 그림들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왜 이 그림들이 잘 그린 그림일까? 나무는 한결같이 하늘로 쭉 뻗어 있고, 하늘은 지겹게 푸르기만 하고, 꽃들은 얄밉게 예쁘기만 한 이런 그림들이 정말 잘 그린 그림인 걸까.
중학교 1학년 첫 미술 시간이 되었다. 소녀가 된 아이는 약간은 기대를 걸어보았다. 어쩌면 중학생을 가르치는 미술선생님은 다를지도 몰라. 미술 선생님은 하얀 스케치북 가득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손모양을 그려보라고 하셨다. 소녀는 아이들이 그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손 모양을 계속 만들어 보았고, 그러다 마음에 드는 모양을 발견했다. 그런데 뒤쪽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 눈엔 이게 아름답니? 그림엔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 표현되는 거야. 왜 하필이면 이렇게 잔뜩 뒤틀린 손 모양을 그린 거냐? 이건 네 마음이 이렇게 뒤틀려 있다는 증거라구!"
그런 소녀가 잠시나마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 것은 중2때 새로 오신 미술 선생님 덕분이었다. 점심 후 5교시,
"밥 먹고 졸려 죽겠지? 나가자!"
교실로 들어온 낯선 남자가 다짜고짜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했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아무거나 눈에 띄는 거, 그리고 싶은 거 그려봐라."
미술선생님은 운동장 한가운데 우뚝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셨다. 순간 미술 선생님이 두 발을 딛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신 그 지점이 우주의 중심처럼 느껴졌다. 미술선생님을 쳐다보다 소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무릎 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놨다. 이 하얀 우주에 나는 무엇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굉장하네! 내가 본 나무 중에서 네가 그린 이 나무가 최고다! …… 나무라고 다 나무냐, 이런 나무가 진짜 나무지."
미술 선생님은 스케치북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운동장 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얘들아! 이 나무 멋지지"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역시나 아이들이 모여 있는 쪽에서
"어휴, 나무가 뭐 이래요"
"이게 뭐 잘 그렸어요"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런 야유들을 뚫고 한 사람의 말이 곧장 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지만 내 눈에는 보이는 거, 그걸 그리는 것이 진짜 그림이야!"
미술 선생님의 그 한 마디 말에 나는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 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운동장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미술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태양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이명랑 님의, '네 눈엔 이게 아름답니' 중에서 발췌)
이 글은 우리 시대 대표 문인들이 전하는 특별한 수업 이야기들 중에서 뽑은 글이다. 이 글의 소녀는 결국 화가대신 소설가가 되었지만 그때의 미술 선생님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고, 작가가 될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준 고마운 분이다.
선생님이 보여주는 행동 하나 하나와 칭찬 한 마디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엄청난 잠재력을 발현시킨다. 이것은 오직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작업이다.
오늘은 제31회 스승의 날이다. 학생들의 꿈을 한 뼘씩 더 높고 크게 자라게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된 것이 한없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