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도움을 청했다. ‘수업이란 무엇이다’라는 화두를 던지고, ‘무엇’에 대해 기술해주기를 원했다. 예문까지 주면서 부탁했다. 선생님들이 수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수업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알고 싶었다. 다수의 의견을 공유하는 집단 지성의 힘을 경험하고 싶었다.
수업에 관한 관념적인 정의는 교육학 서적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수업을 실천하는 실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답을 주는 분이 많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난처했나보다. 마음속에 생각은 많지만 선뜻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실제로 교실 현장의 수업은 복잡한 현상으로 전개된다. 학자들도 일반적 개념으로 담아낼 수 없는 복잡하고 종합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를 짧은 글로 표현하라고 했으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질문을 던진 것도 꼭 답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이론으로 수업을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에 관한 사색을 원했다. 선생님들이 수업을 고민 하고, 그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길 바랐다. 그리고 매일 수업을 하다 보니 타성에 젖는 경우가 많다. 이번 질문으로 이러한 타성에도 깨우침을 주고 싶었다. 그러면 질문을 던진 목적은 그럭저럭 이루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답을 혼자라도 찾아보기로 한다.
수업은 말 그대로 가르치는 일이다. 수업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수업에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교사다. 그러나 수업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 얻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 대상을 가르치는데 대상에 대한 변화의 결과를 고찰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수업은 교사와 학생의 상호 작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연구에 의하면 수업자와 학습자 사이의 언어적․비언어적 상호 작용의 정도나 유형에 따라 학습자의 학업 성취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특히 언어적 상호 작용과 관련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것이 교사의 발문이다. 수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교사는 발문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수렴적 질문을 통해 학습자를 수업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학습자가 교사의 발문에 대답을 하고, 교사는 다시 학습자의 대답에 긍정적으로 수용하면 학습의 효과가 높아진다.
수업의 정의를 내릴 때 통상적으로 ‘학교 체제에서 교사가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 학생들에게 일련의 교과 내용을 습득하도록 지도하는 의도적인 행위’라고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수업 능력이다. 수업 능력을 획일적으로 규정할 수 없지만, 학생이 앎에 접근해갈 수 있게 촉매자,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최근 수업 모형은 문답법, 토론법, 개별 학습법이 떠오르고 있다. 교사 중심의 설명식 수업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학습 활동 중 학습자끼리 서로 협동하여 학습하도록 할 때 학업 성취도가 가장 높아진다. 여기에 맞게 수업도 큰 틀은 학생 중심이어야 한다. 수업에 대해 지나치게 교사 중심이냐 학생 중심이냐 하면서 이항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둘은 배타적인 범주가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연속성이 있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습 모형에 대한 고민도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학습 모형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해 보이지만, 수업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학습 모형을 강조하다 보면 고정된 틀에 빠져 교사 중심이 되기 쉽다. 학습 모형이라는 것도 결국은 학습 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교실 수업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수업은 모형이 아니라 수업 목표와 유기적 연관성을 가지는 교과 내용이다. 더욱 수업은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형의 강요는 실천가인 교사의 다양성을 헤치게 된다.
날개 없는 선풍기가 있다.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신선하고 편리하다. 마찬가지다. 수업 모형대로 따라가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수업 모형을 제시하고 수업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것은 교육학의 이론이다. 현실에서는 스스로 수업의 의미를 묻고, 최선의 수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문가로서 수업에 관한 책도 많이 읽고, 수업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연구회 참여도 적극적으로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시간의 교실 수업에는 학생 수만큼의 수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수업에서 더 중시되어야 할 것은 틀이 없는 자유로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이 행복한 한 시간이다. 좀 흐트러지면 어떤가. 교사와 학생이 끊임없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배움을 엮어나간다면 좋은 수업이 된다. 마음이 따뜻하게 통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고 보면 수업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언어화시킬 수 없는 뜨거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