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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운동회도 신성한 교육이다

필자는 충남의 어느 시골 초등학교 출신인데 당시에는 전 학년이 각 1학급씩 총 6학급 200여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였다. 지금은 저출산과 이촌향도 현상의 심화로 거의 폐교수준까지 몰렸는데 지역주민들이 결사반대해서 겨우 분교로 유지되어서 40여명 학생으로 운영되는 모양이다. 고향 갈 적에 애들을 데리고 한두 번은 들러서 학교를 돌아보곤 하는데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이 학교가 굉장히 컸었는데 세월 탓에 지금은 아주 작게 느껴진다.

학교에서의 추억 중 제일은 역시 가을 운동회였다. 운동회 아침에 경쾌한 행진곡과 함께 만국기가 펄럭이고, 갖가지 장난감을 파는 장사꾼들의 출현은 운동회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학교에 잘 오시지 않던 어머니는 간만에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과 함께 모여서 노는 큰 잔치였기에 운동회는 학교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운동회 한 달여 전부터 전교생이 모여서 행진(86 아시안 게임을 기념한 퍼레이드 형식)을 하기도 하고, 기계체조나 풍물놀이, 무용 등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운동회의 백미(白眉)는 역시 부락대항 이어달리기였다. 이어달리기는 학생뿐만 아니라 동네 형들까지도 모두 달려들어서 하는 동네간 자존심 싸움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모 대학 육상선수 소속 친척 형이 있었기에 수위에 들곤 했지만 이웃 너머 동네에는 늘 한 발짝 모자랐던 기억이 있다.

오늘 신문을 보니 씁쓸한 교육기사가 보인다. 초등학교 운동회를 이벤트 업체에 맡긴 학교 이야기다. 기사를 보면 서울을 비롯한 5개 시․도교육청 소속 초등학교가 2011년에는 518개교가, 2012년에는 587개교가 이벤트 업체에 맡겨서 운동회를 치른 모양이다. 맡긴 이유에 대해서는 운동회 준비를 위해서 교사들의 수업결손이 생기고, 학생들이 방과후에 학원을 가야하기에 업체에 손을 내밀었다는 인터뷰도 보인다.

기사를 보면서 어찌 이런 일까지 생겨야 했는지 생각해 봤다. 단지 수업결손 방지와 수업권 보장을 위해서 했다는 것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운동회 준비에 따른 부담감 때문이었다고 해야 한다. 운동회를 하려면 전 교사가 달려들어서 보름 전부터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오후에 수업을 한두 시간 빼가면서 연습하고, 운동회 이틀 전부터는 총연습을 위한 리허설도 한다. 9월 가을 땡볕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운동회는 단순한 뜀박질이 아니다. 운동회를 하면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몸을 부대끼면서 하나를 느끼고 유대감을 교감하는 신성한 교육이다. 아울러 운동을 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도 날리고 마음껏 소리 질러 보는 좋은 교육의 장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교육적인 기회를 몸이 편하자고 이벤트 업체에 운동회를 맡긴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정당성과 교육적인 함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더욱이 업체 측에서 만든 이벤트에 무슨 교육적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단지 돈을 받고서 예능 프로그램을 흉내 내서 재미만을 제공할 뿐이다. 운동회에서 교사는 교육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하고, 학생들은 단지 이벤트에 동원된 청중일 뿐이다.

주변 주민들과 하나가 되어서 웃고 놀았던 대동한마당 운동회는 사라지고 상업성만 가득한 이벤트 운동회는 이제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뜩이나 교권이 위축되고 공교육 영역에 사교육이 파고들어서 설자리가 좁아지는 때에 운동회마저 이벤트 업체에 맡기는 것은 군인의 무장해제와 다름없다. 교육은 교육전문가가 맡아서 해야 한다. 운동회도 교육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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