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미국의 경영사상가인 다니엘 핑크는 <드라이브>라는 책에서 '모티베이션 3.0 시대'를 선언했다. 생물학적 욕구가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동기 1.0'의 시대에서 경제적인 보상이나 보상과 벌에 의존했던 '동기 2.0'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일이 주는 즐거움 자체에서 사람들의 동기를 유발해야 하는 '동기 3.0'의 시대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이 주는 즐거움 그 자체가 동력이 되어 외부의 칭찬이나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 좋아서 하는 '내적 동기'가 미래의 에너지로서 창의력의 원천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수준에서 최상의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와 일맥상통한다. 내적 동기가 강한 사람은 바로 인생을 즐기며 살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러기에 공자는 <논어>의 옹야 편에서 "뭔가를 알려고 하는 사람은 좋아서 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그 일을 즐기며 하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세상을 변화시킨 걸출한 천재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일에 미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아픈 청춘들에게 미안해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까운 청춘들이 삶을 포기하고 있다. 생존의 욕구와 경제적인 안정의 욕구 너머에 있는 삶 자체에 대한 목적에 도달하기도 전에 인생의 기차에서 미리 내리는 선택하는 길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하고 마는 안쓰러움 앞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떻게 하면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수 있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도를 넘은 경쟁으로 쌓인 실패 경험과 스트레스는 자존감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러기에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고 던져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동기 2.0' 시대의 논리가 넘쳐난다. 어디에나 경제 논리가 지배적인 사회가 되었으니. 좋은 직업의 기준을 비롯해서 결혼의 조건 등 거의 대부분의 사회 논리가 경제적 가치에 집중해 있지 않은가. '부의 논리' 에 갇혀 있다. 얼마나 옳고 바람직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소유하는 가에 목을 맨다. '공유지의 비극'이 곳곳에 난무하는 정글이니 악순환의 고리는 반복된다.
좋아서 즐기고 싶은 일이라면 남의 눈치를 보거나 비교당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밀어주는 어른이 부족한 사회다. 그럴 듯하게 포장된 보기 좋은 대로를 질주하라고 너나없이 떠밀며 살아온 건 아닌지, 부모님도 선생님도 모두 되돌아 볼 때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너만은 그러지 말라고 자식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반성할 때이다. 그리고 놓아주어야 한다. 한 번뿐인 인생,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어서 목적의식이 강한 내적 동기로 좁은 길을 고집하거나 외길을 선택하더라도 지지해 줄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 일하고 싶은 청춘들에게 가슴 뛰는 일자리를!
세 살 먹은 아이도 먹여주는 밥보다 스스로 먹기를 고집한다. 옷을 버리고 밥을 다 흘리며 먹으면서 스스로 해내려는 의지를 보이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탐구하고 자립하려는 모습, 즐겁고 재미난 놀이를 좋아하는 것이 본래 인간의 모습이다. 노는 모습, 좋아하는 모습에서 타고 난 소질을 찾아주는 일이 어른들의 몫이다. 부모나 선생님, 어른들의 고민은 거기서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어떤 아이가 어느 분야에 소질과 재능이 있는지 일찍 찾을 수 있게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를!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파악할 경험과 시기를 놓친 채, 어디로 가야 할 지 떠밀려 세상에 나온 청춘들이 세상 곳곳에서 아프고 힘든 숨을 몰아쉬며 절망적인 눈물로 은둔형 외톨이로 아름다운 청춘들이 음지에서 시들고 있는 기막힌 이 현실. 1%의 소수가 99%의 생존을 쥐고 흔드는 현실 속에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설자리는 바늘구멍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용기가 부족해서, 부지런하지 못해서 대열에서 이탈한 거라고 야단치면서도 뛰어야 할 도약대는 내주지 않거나 목소리조차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
불황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는 현금이 넘쳐난다는 보도는 차라리 슬프다. 더 높은 수익을 위하여 일자리는 자르고 비정규직으로 인건비도 줄인다. 기업도 살아 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곳간을 열어야 할 때는 흉년인 바로 지금이다. 목숨 걸고 달려온 문 앞에서 피튀기며 서로를 짓밟는 청춘들이 울부짖는 목소리가 온 나라를 뒤덮는다. 가난한 시절보다 더 잔인한 게임이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에 들어섰는지 과감하게 다시 돌아가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아프디 아픈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정치가도 기업인도 대답해야 한다. 학교에서만 잘 가르치라고 하지 말고, 부모들이 잘해야 한다고만 하지 말고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내놓기 위해 이익을 나누어야 한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 것인가. 열심히 기르고 가르친 부모와 학교에 감사하며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내주는 기업이 진정한 애국자다. 올해도 학교 문을 나서는 청춘들이 좁은 문 앞에서 떨고 있다. 취업의 문 앞에서 울부짖고 있다.
벼랑을 향해서 가는 잘못 들어선 길임을 알게 하는 일은 두렵거나 힘든 일이지만 해야 할 때다. 어른들이 잘못 길들여 놓은 길에 들어서서 조난의 위험에 처한 청춘들에게, 자식들에게 이제라도 선택권을 돌려줘야 마땅하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여 피 흘리며, 땀을 흘리며 스스로의 목적의식으로 무장하여 즐겁게 살아갈 최소한의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진로 선택의 길에서 고민하는 학생들이 좀 더 용감하게 자신이 즐거운 일, 가슴 뛰는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부모와 선생님들이 나서야 한다. 기업가도 정치가도 모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