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서의 부장교사들이 둘러 앉았다. 그 사이에 행정실장이 뭔가를 배부해 주었다. 그 무엇인가는 바로 예산계획이다. 이미 12월에 각 부서별로 제출한 것을 돌려 받았다. 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 이유를 교장선생님이 설명을 했다. 각 부서에서 제출한 예산이 올해 실제 가용예산보다 더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각 부서의 부장들이 모여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행정실의 이야기로는 실제로 가용예산이 지난해보다 6천만원정도 줄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강당임대와 각종 시험에사용되는 교실임대료를 지난해 수준으로 하더라도 6천만원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왜 예산이 줄었는지는 예측만 될 뿐 실제로 줄어든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예산이 전년대비 6천만원정도 줄었고 줄어든 예산으로 학교살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요금도 인상되고 물가도 인상되었는데, 올해 1년이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각 부서에서 제출한 예산을 1차로 삭감했는데, 반드시 필요한지 검토후에 조금씩 줄여 놓은 상태다. 그렇게 줄이고 줄였음에도 더 줄여야 하는 예산액이 3천만원 가까이 되었다. 우선은 지난해 보다 증액해서 신청한 항목을 살피기로 했다. 가급적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동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나갔다. 이렇게 하다보니 새로운 사업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줄이는 작업도 여의치 않았다.
어쩔수 없이 부장교사들이 둘러앉아 아예 한 항목씩 점검을 해 나갔다. 점검이라기 보다는 각 항목에서 조금씩 예산을 깎아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행사도 위축되고 학생활동에 들어가는 예산도 삭감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숨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무리 해 나가도 그 많은 예산을 줄이는 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각 부서에서 최종적으로 삭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1천만원을 더 줄여야 했다. 다시한번 각 항목별 점검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9백여만원을 줄이지 못한채 끝나고 말았다. 어떻게 하던지 9백만원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최종예산액을 맞춰야 했기에 공과금예산에서 줄였다. 억지로 가용예산액에 편성된 예산을 맞춘 것이다.
지금도 학생들은 냉, 난방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공과금을 90만원도 아니고 9백만원을 삭감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는 유난히 덥고 추운 한해가 될 것 같다. 쾌적한 환경이 되어야 학습도 제대로 되고,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있을텐데...여러가지로 걱정이 앞선다. 추후에 예산을 추가로 편성해서 내려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에 다소나마 위안을 삼지만 불확실한 것에 기대를 하기에는 믿음이 덜 간다. 뭔가 조치가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퇴근길에 올랐다. 왠지 내 자신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