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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육이란 물이 되고 흙이 되어주는 것

-우리 집 거실에서 생명의 신비를 보여주고 있는 제라늄 아가씨 모습이랍니다.-

얼마 전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뒤뜰을 지나 우연히 올려다 본 나뭇가지에 무언가 걸려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잘려진 채 시들어 버린 제라늄 가지였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살아나기를 바라며 물을 담은 유리컵에 넣어두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나고 어느 사이엔가 실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잎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다섯 장의 새잎을 내며 진초록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마저도 신기하고 고마운데 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기다란 줄기를 내밀었습니다. 힘들다는 듯이 기역자로 허리를 숙인 채 제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는 듯이 길게 내민 줄기 끝에 탐스러운 꽃망울까지 달고서! 영양이 부족해서인지 꽃 색깔은 연분홍빛입니다.

버려진 제라늄 가지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에 탄복했습니다. 그리고 말이 없으면서도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와서 내 어깨를 다독이는 녀석의 격려를 받으며 불가사의한 인생의 지혜까지 얻습니다. 최상의 친구는 침묵으로 말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죽음을 이겨낸 녀석의 옹골찬 기사회생이 묵언수행하는 수도자처럼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나 선생님은 살아갈 물과 흙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뿌리를 내릴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필요한지 관심을 가져주고 따스한 눈길로 지켜봐 주는 것이라는 것을! 교육은 바로 한 컵의 물이 되어주는 것이고, 한 움큼의 흙이 되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풀 한 포기마저도 우연히 생겨난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가르쳐 준 제라늄 아가씨가 꽃을 다 피우고 나면 화분에 옮겨 심어줄 것입니다. 일 년 내내 꽃을 피우는 제라늄의 부지런한 성품을 보노라면 쉴 줄 모르고 달리는 바쁜 현대인을 보는 것 같아 더 안쓰러운 꽃이기도 합니다. 제발 한철만이라도 쉬었다가 꽃을 피우면 좋으련만 흙에 심겨진 그날부터 줄기차게 꽃대를 올리는 가여운 녀석이랍니다. 

추운 한겨울에도 여지없이 꽃대를 올리고 서서 죽는 날까지 부지런한 제라늄은 사람에게도 매우 유익하답니다. 모기들이 싫어하는 향을 내뿜기 때문입니다. 그 냄새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이 아니라서 키우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병충해에 강해서 물만 주어도 잘 자랍니다. 아마도 특이한 냄새로 자신을 방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실에서도 반드시 제라늄을 키우곤 합니다. 여름철 모기 퇴치에 좋으니까요.

사철 꽃을 보는 즐거움도 좋고 교육 자료로도 참 좋습니다. 제라늄의 그 부지런한 성품을 수업자료로 활용하면 아이들의 눈빛이 빛납니다. 한 송이의 꽃도 저렇게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데 사람으로 태어나 자기만의 꽃을 피우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고, 꽃보다 못하면 되겠냐고 하면 금방 수긍하는 순진한 아이들 표정을 보게 하는 꽃이랍니다. 그러니 2013년 3월, 새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과 만나는 날에도 변함 없이 제라늄 화분을 사들고 갈 생각입니다.

적당히 자라면 가지를 잘라서 물 컵에 꽂아두고 뿌리가 내리는 모습, 잎을 내고 꽃대를 올리는 모습을 관찰 일기도 같이 쓰게 할 것입니다. 도시건 시골이건 자연과 멀어진 삶을 사는 아이들에게 생명의 신비와 불가사의한 자연의 세계를 직접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성실하게 관찰 일기를 쓴 아이에게는 예쁜 화분에 심어서 선물로 줄 것입니다. 자연과 교감하며 자기만의 꽃으로 키우며 어린 왕자가 자신의 장미에게 책임과 사랑을 확인하듯 사랑을 나누게 하고 싶습니다. 교육이란,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선생님은 바로 풀 한 포기와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한 컵의 물이 되어주고 흙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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