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이 평가 순위에 집착하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순위에 의해 대학의 위상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들은 좋은 순위에 들기 위해 대학 시스템을 정비하고, 평가 요소에 집중 투자한다. 실제로 순위 평가 후에 대학들은 교수 논문 발표 수가 늘고, 대외적인 양적 팽창을 한다. 아울러 순위 평가는 대학의 투자를 북돋우고, 질적 개선을 위한 동력이 되기도 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많다. 대학이 좋은 순위에 들기 위해 장학생 및 졸업생 취업률을 부풀리고, 교수 충원율까지 속인 경우도 있다. 실속은 없고, 몸집만 불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학들이 평가 순위보다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미래 순위에 집착하고 있다. 대학마다 미래 비전과 목표를 발표하면서 순위권을 스스로 정해 발표하고 있다. 엊그제도 전문대학이 같은 재단의 대학과 통합하면서 교명 변경식을 가졌다. 이 대학은 전문대학과 동일 재단의 4년제 대학과 통합해서 연륜이 있다고 말하지만, 대중은 거의 처음 들어보는 대학이다. 이제 막 발을 디딘 대학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대학이 2020년에 국내 20대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작년에 교명을 변경한 사립대학도 2020년 TOP 10이라는 발전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2012년 내 대한민국 10% 이내 연구 우수 대학, 2015년 내 아시아 100위권 연구 우수 대학, 2017년에는 국내 또는 아시아권에 머물러 있는 대학이 아니라 세계 속의 대학으로 발전하고자 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지방 국립대학도 다를 것이 없다. 2015년 국내 20위, 2020년 아시아 50위, 세계 300위라고 구체적인 순위를 밝히고 있다. 지방의 작은 대학은 교묘한 순위를 표방하고 있다. ‘지역기반 10위권 사학’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 대학은 몇 년 전 교육부에서 부실대학으로 지정한 대학으로 지금도 입학생을 채우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고 꿈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성장 동력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밝히면 구성원들에게 자긍심을 줄 수 있어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의 실상은 구체적인 계획에 근거해야 한다. 막연하게 ‘톱 10’이라는 희망을 말하는 것은 대학의 포부로 맞지 않는다. 더욱 그 목표는 대학의 현실 상황으로 볼 때 실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제 대학의 이름을 알렸는데, 어떻게 국내 대학 평가에서 높은 순위에 들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막말로 다른 대학들은 손발을 묶고 있고, 자기들만 노력하는 상황이라면 그 목표가 실현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시대의 흐름과 대학의 발전이라는 틀에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청사진은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는 앞으로 다가올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결국에는 과거가 돼 우리의 전통으로 남게 된다. 대학이 저마다 미래 비전을 발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미래 구상은 현재의 깊은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 대학 모습을 철저하게 성찰한 바탕위에서 살펴야 한다. 냉철한 지성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말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뜬구름 잡기식의 미래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 스스로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충분한 재정 확보가 마련돼야 한다. 동시에 확보된 재정은 효율적으로 운영돼야 하며 또한 그 집행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따라서 대학의 발전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는 재정 확보 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다음으로 대학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세부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대학 본연의 책무인 연구 계획, 학문 탐구의 전진 기지로서의 역할 점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며,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이를 탄력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사회의 새로운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교육체제를 구축하겠다는 플랜이 필요하다. 새로운 교수 방법의 모색, 상담과 취업지도 등 학생 복지 실현 등으로 학교의 비전을 공유할 때 학교도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보아 왔듯이 미래 사회의 모습은 또 어떤 변화가 닥칠지 모른다. 교육도 분명히 안주의 바람은 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는 길이 무엇인지 대비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세기의 교육 환경은 점차 경쟁이 심화돼 가는 추세이다. 명문 대학은 막연하게 7위 안에 10위 안에 드는 꿈만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장·단기 발전 계획과 함께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있어야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