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평준화가 다시 교육계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교육부의 '평준화지역 고시권한 시·도교육청 이양' 방안이 지방 중소도시들의 평준화 전환을 늘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평준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9일 "지방분권 및 교육자율화를 확대하기 위해 고교 평준화 실시 지역 지정 권한을 시·도교육청의 조례로 정하도록 이양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고교 평준화 실시 지역을 교육부가 고시해왔지만 내년부터 이 권한을 시·도교육감이 맡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7월까지 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상정,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해당 지역의 평준화 실시 여부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시·도교육감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평준화 지역은 교육부령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시·도교육감이 관내 지역에 대한 평준화의 지정 또는 해제를 요청하면 교육부가 각 지역의 여건을 고려, 최종적으로 법령개정을 통해 평준화 실시지역을 확정하게 된다.
이보다 앞선 지난 1월말, 노무현 대통령은 대구에서 열린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발전' 국정토론회에서 "자녀교육 때문에 지방에 고급인력이 있기 어렵다면 지방 중소도시는 평준화냐 비평준화냐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겠냐"면서 중소도시의 평준화 자율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당시에도 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지방 중소도시의 고교 평준화 논의가 이슈화되기도 했다.
지난 74년, 중학생의 입시 스트레스와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 실시된 평준화 정책은 현재 실시지역이 23곳으로 늘어났다. 서울과 6개 광역시 등 대도시 7곳을 비롯해 경기 8개시(수원, 성남, 과천, 안양, 군포, 의왕, 부천, 고양), 충북 1개시(청주), 전북 3개시(전주, 군산, 익산), 경남 3개시(마산, 창원, 진주), 제주 1개시(제주) 등 중소도시 16곳이 평준화 실시 지역이다.
평준화가 적용되는 학교는 전국 일반계 고교의 50.4%에 이르고 학생 비율은 전체 고교생의 68.1%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부 방안대로 고교 평준화 실시지역 고시권한이 각 시·도교육청으로 이양될 경우, 비평준화를 실시하는 상당수 지방 중소도시들이 평준화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현재 지역주민들 사이에 평준화 논의가 활발한 비평준화 지역은 평준화로의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민모임 등이 중심이 돼 평준화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지역들만 해도 경기 광명·의정부, 전남 목포·여수·순천, 경남 김해, 경북 안동·포항, 강원 춘천·원주·강릉 등 10여곳에 이른다. 이밖에 안산, 구리, 남양주 지역 학부모들도 평준화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목포, 여수, 순천 지역은 주민들이 99년 처음 평준화 민원을 제기해 전남도교육청이 올해초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각각 71.3%, 68.1%, 77.3%로 평준화 찬성이 전체 의견의 2/3를 넘었다. 전남도교육청은 이들 3개시를 평준화로 전환하겠다고 교육부에 신청했으나 법령개정 등에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어 교육부는 일단 평준화 신청을 반려한 상태다.
그러나 지역여론이 평준화 찬성 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전남도교육청이 평준화 전환을 결정할 당시에도 순천고, 여수고 동문회가 중심이 된 '서남권교육발전협의회'는 "우수학생의 대도시 유출을 막고 지역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명문고를 유지시켜야 한다"며 평준화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경제계 등에서도 평준화가 오히려 사교육비를 가중시키고 우수인력 양성을 저해한다며 끊임없이 평준화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이주호 교수와 위스콘신 밀워키대 김선웅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학교정책과 과외의 경제분석'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 지역의 학업성적 상위 10% 학생들의 과외비 지출이 상위 10∼30% 학생들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학업성적 상위권 학생들의 과외비 지출이 많은 것은 학교 선택권이 없는 정부의 평준화 정책 때문"이라며 "학교 선택권이 허용될 경우 유사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끼리 같은 교실에서 수업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양이 증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실제 분석결과 비평준화지역 학생들의 과외비 지출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평준화 정책이 학교 선택권을 제한, 과외 수요를 증가시켰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준화고와 비평준화고 학생들의 3년간 수능모의고사 점수를 비교한 2001년 KEDI 분석자료에서도 평준화고의 점수상승폭이 비평준화고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왔다는 공식적인 보고서는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