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의 문제는 거의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데 교사들은 공감을 한다. 무엇보다 문제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행복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여 집은 있으나 가정이 결코 편안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을 하는 가정 이야기는 그들 자신의 말대로 어처구니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가정이 10가지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함께 도전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가정이 행복할 수 있다는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이 가정은 아이들 중간고사 전날 가족 모두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 일반 가정의 99%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고등학교 때 축구부 선수였던 엄마는 딸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친다. 아빠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중학생인 아들과 딸은 1년간 학교를 쉬고 장차 세계 일주를 떠날 예정이다. 이를 지켜 본 옆집 아줌마는 "애들 교육은 어떡할 거냐"고 핀잔이다. 이것은 경기도 일산에 사는 '어처구니 가족' 이야기다. 하도 남들이 '어처구니없는 일만 벌인다'고 해서 가족 스스로 '어처구니'라고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외국계 금융 회사에 다니는 아빠 김우종씨와 한지(韓紙) 공예 작가인 엄마 김지영씨, 그리고 중학 2학년과 1학년인 연년생 남매 김종은(14)군과 김서린(13)양 가족은 올해 초 함께 협력하여 '버킷리스트' 10가지를 만들었다. 신년 벽두에 머리 맞대고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지만 엄두 못 냈던 일들'을 하나씩 적었다. 마라톤 완주, 독도 자전거 라이딩, 가족 농장 만들기, 지리산 종주, 한강 횡단 수영, 철인3종 경기, 제주 올레길 트레킹, 가족 음악 공연, TV 출연, 1년간 세계 일주….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는데 마라톤 대회를 시작으로 반년 만에 벌써 4개를 완수했다니 놀랍기도 하다. 지난 달엔 서울 광화문에서 독도까지 6박 7일간 자전거 페달을 이미 밟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열 평 가족 농장으로 가서 상추·호박·깻잎·토마토를 길러 먹는다. 지난 주말엔 지리산에도 다녀오는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보고 남들은 '참 속 편하게 산다'고 이야기 한다. 아빠는 "저도 아이들 유학 보내느라 2년 넘게 기러기 아빠 노릇 해봤어요. 하지만 평생 '현실'에 매달려 하루하루 버텨가며 살 순 없잖아요? 작년 여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보면서 지금 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정리를 하였다.
엄마는 "한때는 우리도 영어·수학·논술 같은 사교육에 매달 300만원 넘게 썼어요. 다 소용없더라고요. 대학 못 보내면 어떡하느냐고요? 현장에서 길러진 인내심, 자기 주도적 태도만 몸에 배 있으면 공부는 언제 해도 잘할 수 있어요. 불안하지 않아요."
딸은 "버킷리스트 도전 반년. 변화는 컸다. 아이들은 또래 사춘기 청소년과 달리 저희끼리 놀기보다 가족 행사에 참여하길 좋아한다. 여전히 2G폰을 쓰고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도 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비비크림 바르고 다니는데, 저는 마라톤 하고 자전거 타니까 얼굴이 까매져요. 그런데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걔네들은 주말에도 아빠 얼굴을 못 본대요."
아들은 "초등학교 때까지는 게임을 좋아해 친구들과 PC방에 자주 갔어요. 지금은 가족과 산에 오르는 게 더 좋아요. TV도 평일에는 안 봐요."
딸은 "자전거 타고 영동터널을 향하는데 계속 오르막길이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나중엔 주욱 내리막길이더라고요. 짜릿하고 상쾌했죠. 처음엔 차 몰고 쌩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나중엔 '저 사람들은 이 기분 모르겠구나' 생각하니 그 사람들이 좀 불쌍했어요."
엄마는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해도 사춘기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죠. 하지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힘든 일을 함께하다 보니 서로 의지하게 돼요. 무엇보다 대화가 많아졌어요. 큰애는 결혼 후에도 마당 있는 집에서 엄마·아빠랑 같이 살자네요."
아빠는 "먹고 사는 문제야 어떻게든 되겠죠. 아이들에게, 또 저와 아내에게 지금 아니면 못 남길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어차피 우리는 늘 도전하며 사는 것 아닌가요."
이 가족은 올 연말까지 남은 6가지 꿈 가운데 5가지를 이룰 계획이라고 한다. 남은 하나 1년 세계 일주 출발은 내년 4월로 잡고 있다. 30개국을 돌며 엄마의 특기인 우리 한지 공예의 아름다움도 전하기로 했다니 그들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가는 많은 학부모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족이 함께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는 것 같다. 지나치게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우리 나라 부모들이 한 번은 깊이 생각하면서 넘어가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