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여름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연일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방학이 절로 생각난다. 지금쯤 일부 학교는 벌써 방학을 했을 테고, 늦은 학교들은 적어도 이번 주까지는 방학식을 마칠 것이다. 지난 1학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학교는 잠시 휴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벌써 학생들은 여름방학 생각으로 한껏 들떠있는 모습이다. 학생들도 아닌 교사인 나도 솔직히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요즘 방학은 옛날 같지가 않다.
나의 어린 시절의 방학을 떠올려 보자. 여름방학이 되면 외할머니댁에 놀러 가 외사촌들과 개구리도 잡고 밭에서 직접 옥수수를 따서 쪄먹고, 감자도 캐고, 그러다 온몸이 땀에 절어 축축해지면 집 뒤에 있던 큰 저수지로 달려가 옷을 모두 훌러덩 벗어버리고 저수지에 뛰어들어 멱을 감던 생각이 난다. 그것도 지치면 시원한 느티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도스토옙스키며, 톨스토이며, 삼국지며, 어린 왕자를 만나곤 했다. 더위가 잠시 주춤해지면 친구들과 온종일 푸른 산천을 뛰어다니며 청태 서리를 하고 종종 냇가로 달려가 천렵을 하며 종회 무진 산천을 누비던 그 시절은 진정 살아있는 방학다운 방학이었다. 그러다 보면 방학숙제는 고스란히 밀려 개학하기 하루 전날 벼락치기로 하다가 어머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비록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유익한 여름방학을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아무도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이가 없었지만 놀다 지치면 대청마루에 책을 높이 쌓아놓고 종일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 읽었던 지식과 상식이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양분이 되었으니 참으로 훌륭한 공부였던 셈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차마 방학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방학하자마자 겨우 이틀 정도 쉬었다가 바로 보충수업이다. 주간 보충수업이 끝나면 또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다. 학기 중의 생활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학기 중보다 더 수업이 많고 여유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학이 되어도 이렇다 할 추억이 없다. 방학다운 방학을 주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요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이틀이나 삼일 정도의 자투리 시간이 나도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를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낸다. 정말 삭막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모두 우리 기성 인들의 잘못이다. 제발 이번 방학만큼은 달라졌으면 한다. 학교와 방안에만 갇혀있던 아이들이 저 푸른 들판을 마음껏 뛰놀고, 높은 산에 올라 호연기지도 길렀으면 좋겠다.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을 달려보는 것도 좋겠고, 가방 하나 둘러메고 배낭여행을 떠나도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여름방학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없애야겠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방학다운 방학을 돌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