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별 공간계획, 안정된 경사지붕 운동장은 교사동 한쪽으로 배치 소음 줄이고, 동선 짧게 건축 건축가에만 의존하면 실패많아 행정·전문가·지역민 협력 필요
1980년대 학교건축은 지역, 대지조건, 주변환경에 관계없이 동일한 표준설계도에 의해 부족한 교실만을 증축하여 갔다. 일변 130m가 나오는 운동장 계획(100m 달리기 시설기준에 맞추기 위해)으로 인해 큰 운동장이 대지 가운데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했다. 따라서 부실한 난방에 그나마 남향배치로 햇빛이라도 받아야할 교사동은 동·서향 관계없이 울타리에 바싹 부쳐 지어졌다. 여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야 그나마 바람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가운데 박혀있는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의 함성, 공과 운동장 먼지들이 날라들어 창문열기도 쉽지 않다. 교문은 운동장 가운데에 있어 등교하려면 지름길(운동장)로 못오고 운동장을 반 바퀴 돌아 짜증나는 행진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학생들의 외부 활동은 하나의 운동장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체격에 상당한 차이가 나는 초등 1학년부터 6학년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을 같이 사용하다보니 연령별 특성놀이나 운동이 이뤄지는 것은 꿈도 못꾸며 체격차로 자주 충돌, 사고까지 빈번히 일어난다. 90년 초까지 계획자나 집행자, 건설 참여자들은 이런 학교건축에 아무런 잘못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시 해왔으나 일부 학교 교육환경 변화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기에 이르자 89년 교육부(그 당시 문교부) 시설파트에서는 "국민학교 건축계획의 모형연구"를 1년 이상 학계와 공동연구, 학교건축의 나아갈 방향과 계획기준을 설정했다. 학교건축 대변혁의 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형연구 결과의 주요 방향은 ①연령별 학습, 활동공간 분류와 그 종류, 규모의 적정화 계획 ②저학년은 각 교실 내에 교사실, 화장실, 사물시설 등으로 넓은 독립된 공간계획 ③중·고학년은 교실의 다양성과 융통성이 가능케 계획하며, ④층수도 저학년은 2층 내외, 그 옥상부는 활동공간으로 활용 ⑤형태도 어린이들의 미의식에 맞게 다양한 조형성을 갖게 한다. 지붕도 경사 지붕으로 하여 안정된 느낌을 갖게 하고, ⑥운동장은 장축을 남북으로 되게 하여 운동의 기능성을 도모하고 교사동의 한쪽으로 몰아 배치함으로 소음을 줄이고, 동선을 짧게 집중형으로 계획하며 ⑦연령별 색채선호도와 활동성을 고려해 건축 내·외의 색채계획을 하도록 한다. ⑧학교시설을 지역인이 이용 가능케 한다는 8가지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 계획이 적용된 첫 학교가 서울 중계동 아파트 단지 내의 불암 초등학교다. 아름다운 불암산이 보이는 대지에 93년 시공된 불암초등교는 시공 당시부터 인근 주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대지 한가운데 건물이 들어가고 높고 낮은 건물이 어우러져 있는 등 그 동안의 학교건축과는 판이하게 달라 병원, 백화점, 연구소를 짓는다는 소문이 오가기도 했다. '좋은 학교'라는 입소문으로 학생이 몰려 2, 3부제 수업까지 하여야 할 형편에 다다랐고 아파트 값도 상승시켰다. 좋은 학교환경이 이루어지면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인이 모두 애착을 느끼고 긍지를 가질 수 있어 학교시설의 이용성도 높아지며 참여행위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실증된 것이다. 이에따라 정부에서는 각 시·도·군에 현대화 시범학교를 지정, 교육환경의 개선에 노력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인식과 능력, 소명과 의지가 결여된 곳에서는 현대화 시범학교 추진이 오히려 표준설계도에 의해 지어진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교육환경은 개개 건축가들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편적인 분야가 아니라 다방면의 종합화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학교건축은 정책수립·집행자, 교육행정가, 운영자, 교육연구자, 건축가, 각 전문분야인, 교사, 학생, 지역인들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계 전단계에서 종합,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방향모색이 필요하다. 이호진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한국교육환경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