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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똥통에서 건진 내 구두

구두에선 향내(?)가 솔솔 풍기고 있었다

나는 직업이 교원이다. 학교 선생님인 것이다. 예부터 교단에선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귀가하기 전에 목에 걸린 백목가루, 막걸리 한 잔으로 씻어 내려야 해!” 선배들이 하는 말인데 과학적 근거는 없는 말이다. 아이들 가르치면서 칠판에 판서하다가 흩날린 백목가루를 술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회포를 풀자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선생님들이 술을 많이 드시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니다. 두주불사형 체질은 몇 분 계시지만 대개 술을 잘하지 못 한다. 술을 먹되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토하는 것이다. 젊은 교사들은 그런 경험 몇 번하면서 술에 적응하여 주량이 조금씩 느는 것이다.

총각 교사 시절, 퇴근 후 선배님 초대가 있었다. 음식이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으니 아마도 부모님 회갑 잔치였나 보다. 축의금도 내고 저녁식사도 하고. 그런데 귀가하려 하니 내 구두가 없어진 것이다. 사방을 쩔쩔매고 찾다가 못 찾아 선배님 운동화를 신고 집으로 갔다.


그 구두 어디서 나왔을까? 다음 날 학교에 없어졌던 구두가 나타났다. 선배님 왈, “응, 이 구두 화장실에서 꺼냈어! 내가 깨끗이 닦았으니 신고 다녀.” 맞다, 내 갈색 구두다. 선배님은 구두약을 발라 깨끗하게 손질해 오셨다. 그러나 냄새를 맡아보니 특유의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구두약과 똥 냄새가 혼합된 것이다.

그 구두는 나에겐 귀한 거였다. 교육대학 졸업 후 작은 형이 발령 선물로 사 준 구두였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발이 편해 아껴 신던 구두였다. 3년간 신었으니 더 신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 똥통에 빠진 것이다. 누가 빠뜨렸을까? 바로 1년 후배였다. 술을 못 이겨 바깥 화장실에 가서 토하는데 바로 내 구두를 신고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실수로 구두 하나를 빠뜨린 것이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그 후배로부터 사과를 못 받았다는 사실. 구두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선배로서 차마 구두를 사달라고 요구를 하지 못하였다. 지금 후배는 50대 후반이 되어 어느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데 이 사실을 기억하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1980년대 일어난 사건이다.

1970년대 중반 교육대학 학생들, 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하기야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으니 술은 대부분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사실 하나! 주위에 술 취한 자기를 부축여서 자기집까지 데려다 줄 친구가 있을 때 취하여 쓰러진다는 사실. 술이 취하긴 했어도 상황판단은 제대로 한 것 같다. 술 취한 사람 옆에서 부축해 보았는가? 무척 힘들다. 그러나 우정이 무엇인지 그것 하나 때문에 친구를 도와준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술을 입에 댄 것은 1975년 2월이다. 예비고사 후 대학 본고사 예비소집일에 고교 선배를 만난 것. 그 선배는 너무 반가와 하며 가까운 찻집으로 안내하였다. 알코올 도수가 가장 낮은 것을 딱 한 잔 했는데, 그만 취하고 말았다. 집에 가서 본 고사 시험 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술에 대한 두려움과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 때부터 생겼다.

지금도 술은 잘 하지 못한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소주 세 잔이면 이상 끝이다. 몸이 술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체질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좋은 점은 술 때문에 민폐를 끼치거나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나를 우리 가족도 좋아한다. 그러나 술 마시고 허점을 보여야 친구도 사귀는데 그게 단점이다. 험한 세상, 술친구도 있어야 하는데 술친구가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술에 대한 좋은 추억보다는 좋지 않은 추억이 많다. 그러니까 술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하게 되었나 보다. 그러나 술도 하나의 음식이다.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면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사교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과음은 안 된다. 다른 사람의 구두를 신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똥통에 빠진 내 구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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