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쩔 때 고개를 숙이는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부끄러울 때, 아니면 성공이나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일을 쉽게 포기하거나 미리 패배를 예상하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혔을 때다. 그렇다면 수업 시작 10분도 안되어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엎드려 잠을 청하는 이 나라 일반계고등학교의 수많은 학생들은 어떤 경우에 해당될까. 정상적인 경우라면, 친구들과 함께 하는 배움의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높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 찬 미래를 향한 부푼 꿈에 가슴이 뛰어야 할 이팔청춘의 나이에 그들은 무엇을 그리도 잘못해서 고개 한번을 들지 못하고 수업에서 소외당해야 하는 것이며, 어른이 되어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보기도 전에 일찌감치 낙담과 절망에 길들여져 사는 법부터 먼저 학교에서 배워야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잘못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굳이 찾으라 한다면,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것뿐일 것이다. 학업성적을 포함한 여러 가지 조건 상, 특목고나 자사고에 갈 수는 없고, 일찍 직업관련 기술을 배우고 익혀 사회에 진출하고파서 특성화고등학교라도 가고 싶지만 그것마저도 치열한 경쟁에 밀려 결국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반계고교로 배정받은 아이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는 동안 국·영·수 같은 도구교과의 학습결손이 지속되다 보니, 대학 진학을 목표로 입시 공부에 치중하는 교실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따라갈 갈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수업을 듣는답시고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고통일 밖에. 대학문턱이라도 밟아야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이기에 문·이과 아닌 예·체능 쪽으로 진로를 잡고 정규수업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발길을 돌려 공부해 보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도무지 풀 길 없는 막막한 진로 앞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무력감이란!
아이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길러내야 하고, 저마다의 타고난 소질과 적성, 꿈과 끼를 찾아 진로를 탐색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길을 가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합리한 교육제도와 학교시스템 때문에 꿈도 목표도 없이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채 젊디젊은 나이를 한숨으로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 가슴 아프다. 아울러 공부 잘하는 우수학생들을 특목고와 자사고에 다 빼앗긴 채 중·하위 집단의 학생들만 가지고 명문대 진학률을 높여야 하는 일반계고 선생님들의 ‘맨 땅에 헤딩하기’식 입시지도와 공부에 뜻이 없는 아이들까지 함께 보듬고 나가야 하는 힘겨움을 지켜보는 일 또한 힘들다,
일반계고교의 이 같은 위기가 결국 현행 공교육 위기의 핵심적 실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한다면 정부는 이제라도 과감한 정책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현재 일반계고교에 배정받은 학생의 20%정도는 특성화고교를 희망했던 학생들이다. 재정 부담이 따르겠지만 특성화고교의 입학정원을 늘여서라도 그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마땅하다. 취업에 뜻이 있는 학생들을 억지로 대입준비 중심의 획일적 교육과정 굴레에 묶어두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픈 아이들의 인생을 그르치는 크나큰 죄악이다. 또 하나는 일반계고교의 교육과정 자율화를 대폭 허용해서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과 요구에 부합하는 직업교육을 포함한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과감한 인력 및 예산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욕심 같으면, 내년부터 모든 중학교에 시행될 예정인 자유학기제를 고등학교 과정에서도 한 학기쯤 시행해서 아이들이 성적과 입시중압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진로를 찾도록 하는 것도 아이들을 구하는 한 방법일 수 있겠다.
우리들 삶의 본질이 행복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때, 행복의 성취에 기여하지 못하는 교육이라면 굳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인간으로 하여금 최선의 자아를 발현시키도록 돕는 작용이 교육이라면, 우리의 미래를 걸머지고 나갈 저 아이들이 인생의 성패를 가름하는 소중한 배움의 과정에서 더 이상 소외되지 않아, 고개를 당당히 들고 저마다 원하는 공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