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승의 날, 참으로 뜻 깊다. 30여년 전 제자들로부터 커다란 난 화분을 받고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40대 중반이 된 그들. 초교 때 담임 찾지 않아도 누가 무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필자를 찾았다. 그렇다고 필자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1980년대 초반 수원매원초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4년간 근무하였는데 5학년과 6학년을 번갈아 담임하였다. 그 당시 내 나이 20대 중반의 햇병아리 교사다. 직장으로서는 두번째 학교다. 당시 이 학교는 수원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원천유원지 근처에 있는 학교다.
1983학년도에 담당한 6학년 6반. 1984년 2월에 졸업한 이들은 수원매원초교 제15회 졸업생이다. 그들과의 약속 하나. “우리들, 매년 6월 6일 12시에 모교에서 만나자!” 이 약속 잘 지켜졌을까?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몇 번 지켜지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어린 철부지들의 약속, 실천이 뒤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약속은 무서운 것. 이들의 머릿속에는 언젠가 이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러다가 SNS로 밴드가 활성화되고 스승의 날을 두 달 앞두고 담임 선생님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스승의 날 축하 화분을 보내고 드디어 만남을 가졌다. 무려 초교 졸업 후 31년만에 지킨 약속이다.
필자가 가장 궁금히 여기는 것은 제자들이 기억하는 선생님이다. 혹시 나쁜 기억을 하고 있지나 않을까? 그게 가장 염려되는 것이다. 스승이라면 제자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인생에 도움을 주어야지 만약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면 만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내 궁금증에 제자가 한 마디 한다. “좋은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만남이 이루어 진 겁니다.”
모인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학교 뒷산에서의 선착순 기합. 그 당시만하여도 교육의 수단으로 체벌이 있었다. 특히 숙제 불이행자에 대한 처벌은 주로 체벌이었다. 다행히 이들은 체벌로 생각하지 않고 훈육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뒷산을 올랐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둘째, 전교생의 포크댄스. 전교생이 중간놀이 시간에 운동장에서 포크댄스를 즐겼는데 바로 이 댄스의 지도자가 필자였던 것, 세계의 민속무용을 전교생이 4년간 즐겼는데 아마도 우리반이 제일 잘 했을 것이다. 이들은 포크댄스보다 남녀 학생이 손잡는 것이 그렇게 불편했다고 실토하고 있다.
셋째, 점심시간 선생님과 함께 한 식사. 당시만 해도 학생이나 교사나 모두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했다. 식사 시간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4명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반찬도 나누어 먹었다. 그러면서 그들과 가까워졌다. 혼식 검사도 있었는데 학생들도 교사의 밥과 반찬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넷째, 젊은 총각교사의 교육에 대한 열정.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 교직경력 7년째 그들을 만난 것이다. 수업도 열심히 했지만 여자배구 창단 지도, 보이스카우트 대원 지도, 폐품수집, 학교밭 농작물 가꾸기를 지도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야간대학을 다니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우리반 학생들의 도움이 큰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아마도 우리 반 학생들이 오늘 만남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선생님의 모습이었나 보다. 30여년 전과 걸음걸이와 모습이 똑 같다고 한다. “애들아. 이제 좀 있으면 회갑인데 너무 심한 칭찬 아니니?” 그들에게서 소중한 선물도 받았다. 답례로 필자의 교육칼럼집 5집을 주었다. 이런 모임 자주 갖기로 약속도 하였다. 그들과의 3시간여 만남, 행복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