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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40여 년 전 골목길 추억을 찾아서

문득 어린 시절 뛰놀았던 동네 모습이 그립다. 그 동네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도 무척 많이 변했을 것이다. ‘실행이 답이다’를 신조로 삼고 있는 필자, 아내와 같이 그 동네를 찾았다. 그 동안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요즘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곳은 수원시 권선구 매산로 3가 111번지. 모교인 세류초등학교 인근이다. 지금의 정문이 아닌 옛정문 앞 골목에 위치한 곳이다. 필자는 이 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러니까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살았다. 유년시절,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자가용으로 그 당시 우리집 골목길을 천천히 오른다. 얼굴이 익은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보인다. 바로 어렸을 적 구멍가게 주인이다. 그렇다면 이 분은 이 곳에서 60년 이상을 사신 분이다. “바로 앞 집에 살던 영관이여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인사를 드리니 알아보지 못한다. 그 분의 연세는 88세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보다 5살 아래인데 아직 정정하시다.




가장 궁금한 것은 우리집 모습. 그러나 그 흔적은 전혀 없다. 그 대신 2층집이 들어섰다. 대문안에 들어서면 대추나무, 매화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등을 기억했지만 삭막한 건물만 버티고 있다. 주소는 세류로 83번길로 바뀌었다. 우리집 뒷집인 방00 선생님 댁도 당시 흔적이 없고 2층집이 들어섰다.

골목길 마루터기로 올라섰다. 나무가 우거진 서울대 농대 교수 집터는 연립주택이 들어섰고 자가용 한 대가 주차해 있다. 이 마루터기에서의 추억. 명절이면 윷놀이를 했고 기다란 의자를 내놓아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였다. 지나가던 엿장수와 장기놀이를 했고 동네 누나가 기타로 가르쳐준 ‘해뜨는 집(The House of Rising Sun)을 연주해보던 곳이다.

마루터기에서 골목길로 접어들면 한 쪽 공터가 유리 구슬치기 하던 곳. 지금은 대문이 들어서 있다. 이 곳에서 구슬치기를 하였는데 ‘알빼기’라는 것이 있다. 구슬 여러 개를 던져 상대방이 지적하는 구슬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내 놓았던 구슬을 모두 가져가는 놀이다. 그 당시 소년들은 얼마나 실력이 뛰어났는지 어려운 위치에 있는 구슬을 곧잘 맞추었다.




막다른 골목도 한 곳 있었다. 지금도 막다른 골목인데 대문 두 곳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아마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이 곳은 얼마 안 있으면 주거 환경 개선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잡초가 우거진 것을 보고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비가 오면 빗물이 비탈 아래에 있는 저 집으로 몰려 들겠네!”

당시 한옥 기와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6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유년시절 이 기와지붕 속에 할미새가 둥지를 치고 새끼를 쳤다. 그 당시만 해도 개발이 되지 않아 동네에서 할미새, 때까치 등의 새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집 울타리 위를 보니 깨진 유리가 박혀 있다. 그 당시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옛 우리집 앞에서 모교 세류초교를 바라다본다. 당시의 모습은 아니지만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학교의 시종 사이렌 소리가 우리집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선생님들의 출퇴근 모습도 종종 보았다. 담임선생님은 가정방문으로 우리집을 찾기도 하였다. 박00 선생님은 우리집에서 자취를 하였다고 들었다.


아내와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가는 골목은 아직도 있다. 이 곳에서의 까까머리 중학생의 추억 한 장면. 당시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법은 휘파람. 대개 남학생이 부르면 고고한 여학생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친구 중 한 명이 골목길에서 한길을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휘파람을 부니 그녀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린 골목길 안쪽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하는 말, “아! 우리가 불렀는데 왜 도망치는 거지? 그 여학생에게 가자!” 골목길 빈터에서 그 여학생과 마주했다. 그 여학생 허리에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면서 하는 말, “야,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왜 도망가는 거냐!” 우리 친구 중에 누군가 조그맣게 한 마디 한다. “야, 쟤랑은 안 되겠다.”

이 곳을 돌아보니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집도 눈에 보이고 집을 허물어 공터가 된 곳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세류초교 인근은 세류지구 주거 환경개선사업으로 15층짜리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고 있다. 여기도 머지않아 이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유년시절, 학교 건물이 그 동네에서 가장 높고 최신식 건물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모교 모습을 보니 역사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낡기도 하였지만 주위 고층 아파트에 푹 파묻혀 있다. 어찌보면 이게 교육의 모습이다. 학교가 그리고 교육이 앞서가야 하는데 뒤쫒아 가기 바쁘다. 누군가가 변하는 동네 모습과 학교 모습을 기록해 두었으면 한다. 이게 살아있는 우리네 삶의 역사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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