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딸의 초등학교 일기장을 보며
바로 어제의 일이다. 식탁 위에 일기장 몇 권이 놓여 있다. 겉표지를 보니 지금 대학 4학년인 딸의 초등학교 때 일기장이다. 일기장 뿐 아니라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독서록,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그림일기 등 10여권이 놓여 있다. 무슨 일일까?
귀가하여 돌아온 아내의 말을 듣고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아내의 여동생과 조카들이 우리집을 방문한 것.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을 위해 딸의 초등학교 때의 공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그 일기장, 독서록 등을 꺼내어 보여 주었던 것. 조카들의 반응을 물어보니 ‘별로’라고 답한다. 아쉽게도 이모의 성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일기장 한 권을 펼쳤다. 2001년이니 14년 전이다. 일월초등학교 4학년 달빛반 30번. 4월 7일 토요일인데 제목이 ‘아빠’다. 아빠가 화개장터에 여행을 가서 아빠의 잠자리에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잤다는 내용과 아빠가 안 계시니 집안이 조용하다, 우울하다며 역시 아빠가 집에 계신 것이 좋다는 것이다.
딸이 아빠를 닮았을까? 기록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 필자다. 직업도 직업이거니와 담당 교과가 국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성격과 습관의 영향이 더 큰 듯 싶다. 기록을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 기록을 소중히 간직하고 활용하고 있다.
딸 아이도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 자신이 배웠던 교과서, 필기했던 노트 등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생인 아들은 다르다. 한 학기가 지나면 배운 것을 그만 정리하고 만다. 그러므로 아들에게는 과거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물건 보관 면에서 딸과 아들이 전혀 다르다.
화개장터라고? 거길 왜 갔었지? 누구랑 갔었을까? 딸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필자의 수첩을 펼쳐보았다. 화개장터를 방문하고 남원의 광한루, 전주를 거쳐 1박2일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안산에 근무할 때인데 직장 동료와 상사, 관내 교장, 학생부장 등 모두 6명이 다녀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이 망각을 복원시켜 주었다. 기록의 힘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10여 년 전인가? 학교에서의 일기검사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며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에 개선을 권고하였다. 명분상으로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아동 인권을 침해하니 일기검사 관행을 개선하라는 권고다. 여기에 교육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되었다.
당시 일선학교 교사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잠잠해지고 말았다. 담임이 하는 일기검사, 교사에게는 사실 귀찮은 일이다. 일기를 읽는데 시간이 걸리고 조언까지 써 주려면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왜 일기검사를 하였는가? 교육적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교육 열정과 사명감이 높은 교사일수록 그 동안 해 온 일에 대한 허탈감도 컸을 것이다.
일기의 교육적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일기를 쓰면서 인성이 다듬어진다. 하루 동안의 자기 생활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을 깊고 넓게 갖게 된다. 내일의 계획을 세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둘째, 문학 능력의 토대가 된다. 시, 소설, 수필 등을 창작하는데 소중한 소재는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생활 속에서 의미를 찾고 감동적인 것을 문학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그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매일매일의 일기는 글쓰기의 밑바탕이다.
셋째, 일기를 통하여 자신과의 대화를 나눔은 물론 부모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평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하여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승화함으로써 인격이 닦아지는 것이다.
넷째, 소중한 개인사의 기록이 된다. 필자의 경우, 20여 년 넘게 기록한 수첩을 가지고 있는데 부족한 뇌의 용량을 보충해 주고 연도별 통계 비교 등 유의미한 자료를 생성해내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록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굳이 일기가 아니라도 좋다. 그 날 있었던 유의미한 일을 단 몇 줄로 기록하면 부담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우리 국민 모두 일기쓰기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게 선진국민이 되는 하나의 지름길이다. 인권도 좋지만 아무데나 인권 붙이지 말고 진정 어느 것이 우리 자식을 위한 길인가를 생각했으면 한다. 늘어나는 학교 폭력과 무너지는 교권도 이와 무관하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