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오후 4시경 히타카츠항을 출항한 비틀호가 5시 20분경 부산항에 도착했다. 달맞이언덕의 야간 풍경과 해운대모래축제를 보기 위해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숙소를 정했다. 저녁을 먹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어둠으로 물든 세상을 인공불빛들이 밝힌다.
아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달맞이길로 향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동쪽으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가에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운대해수욕장과 광안대교 주변의 야경이 아름답다. 그동안 여러 번 들렀던 곳이지만 야간 풍경은 처음이라 새롭게 다가온다.
달맞이길은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송정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와우산(높이 109.3m) 중턱의 고갯길로 ‘달맞이고개, 문탠로드’라고도 부른다. 도로변에는 젊은 사람들이 찾는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영화촬영 장소도 몇 곳 있다. 고갯길 꼭대기 달맞이동산에 해월정이 있고, 달맞이길의 아름다운 월출은 대한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달빛꽃잠길, 달빛가온길, 달빛바투길, 달빛함께길, 달빛만남길 등 한적한 오솔길을 밤에도 산책할 수 있도록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다. 하늘에 달이 없는 날이었지만 아내와 솔 향을 맡고 운치를 느끼며 추억 쌓기를 했다.
날씨가 흐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맞이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숙소 앞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해운대모래축제장을 둘러봤다. 해운대모래축제는 2005년 APEC 성공 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시작된 모래를 소재로 하는 친환경 테마축제다. 백사장을 캔버스 삼아 풀어놓은 모래조각품들이 어울림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고, 어른과 아이가 소통하고, 꿈과 희망을 키우고, 추억과 낭만을 즐기게 한다.
달맞이길은 벚나무와 소나무가 늘어선 해안도로가 8km에 이르고, 굽잇길이 15번 나온다하여 15곡도로 불릴 만큼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전날 밤에 걸은 길을 차로 넘어 전망대와 해월정에 들르며 청사포로 갔다.
미포, 청사포, 구덕포가 해운대의 삼포다. 청사포는 달맞이길 너머의 바다마을로 터널을 뚫기 전에는 해운대에서 송정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수령 300여년의 망부송, 해변철길, 아름다운 일출, 갯바위 낚시, 질 좋은 미역이 유명하다. 멋지게 생긴 용비늘 와송나무에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이 마을에 모두 부러워할 만큼 금슬이 좋은 정씨 부부가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는데 바다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소나무 두 그루를 심고 나무에 올라가 수년을 기다리다 죽어 망부송이 되었고, 부인을 가엽게 여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남편을 만나게 해 청사포가 되었단다.
방파제 끝 등대까지 나가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곳에서 육지방향을 바라보면 해안선이 길게 뻗어 있고 그림 같은 집들이 언덕위에서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어 유럽의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운치가 느껴진다.
송정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모래가 고운데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이나 연인들의 피서지로 좋다. 해운대와 송정을 연결하는 도로와 송정터널이 개통되고 관광객도 많아졌다. 작은 포구마을(구덕포)에서 죽도공원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름답고 해안을 따라 자연산 회를 취급하는 횟집들이 많다.
송정해수욕장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죽도공원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 휴식공간이 조성되어 그늘에서 편히 쉬기에 좋다. 이곳 바닷가 바위 위의 팔각정자 송일정은 일몰이 아름다운 장소로 유명하다. 송정해수욕장은 해운대나 광안리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있어 정이 간다.
기장해안로에서 연화리 방향 해안으로 들어서면 등대길이 시작되고 서암마을 앞바다에서 개성이 넘치는 이색등대들을 만난다. 연화리를 1구는 서암, 2구는 신암으로 구분하는데 서암마을에서 바다방향을 바라보면 4개의 등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의 오른쪽과 왼쪽에 흰색의 젖병등대와 빨간색의 차전놀이등대, 멀리 대변항의 출입문인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등대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는 월드컵등대까지 바다위에 등대박물관을 만들었다.
등대에도 각각의 사연이 담겨있다. 뱃머리를 닮은 차전놀이등대는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닭의 벼슬처럼 보여 닭벼슬등대로도 불린다. 젖병등대는 당시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았던 부산시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방파제를 따라가면 젖병등대를 축소한 사랑의 편지함이 있다. '젖병등대, 부산의 미래를 밝히다.' 젖병등대의 동판에 있는 문구처럼 부산의 미래를 밝힐 144명 영유아의 손과 발을 하나하나 양각한 타일이 이색적이다.
영화 친구에서 주인공들이 학창시절을 보낸 대변항은 해마다 5월초에 멸치축제를 여는 항구다. 미역도 이곳 기장의 자랑거리다. 해안을 따라 멸치회와 장어구이를 파는 횟집들이 즐비하고 멸치를 말리거나 크기별로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연화리와 대변리는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이웃이다. 옛 이름이 용암인 대변항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곳 중 하나로 천혜의 조건을 가진 어항이다. 죽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들이 참 많다. 연화리 2구 신암선박출입항신고소 앞에 있는 섬이 대변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죽도다. 올해 완공된 너비 2미터, 길이 65미터의 연죽교가 대변항과 죽도를 연결한다. 다리위에서 바라보면 대변항과 뒤편의 봉대산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