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내린 비로 갓 세수한 초록빛과 스치는 훈풍이 신록의 연서로 유혹하는 주말이다. 짙어만 가는 봄을 만끽하자고 시작한 거제도 여행. 부푼 마음은 그 첫 출발지인 포로수용소 유적지에서 얼어붙기 시작한다.
“공화국으로 도라가자”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지 전시관 낡고 헤진 방패연에 새겨진 문구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화국은 북한이다. 전쟁의 화염과 피비린내 속에 겨우 부지한 목숨인데 이곳에서 또다시 다른 이념과 사상으로 갈등과 반목, 폭동과 살인은 전쟁터보다 더 잔혹하게 행해졌다. 어쩌면 호모 사케르란 그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호모 사케르!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멘이 사용한 말로 로마 시대의 범법자를 가리키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대로 죽일 수 있지만, 대신에 신전에 제물로 바칠 수도 없는 존재를 일컫는다. 6.25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는 법안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내세우는 이념과 사상이 법보다 더 높은 곳에서 생사를 주관하였다.
나는 6.25 한국전쟁을 겪지 못했다. 하지만 NLL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제1연평해전, 대청해전과 천안함 폭침 사건, 핵실험, 어제의 약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벼랑 끝 전술로 몰고 가는 북한 정권의 모습이 또 다른 호모 사케르를 떠올리게 한다. 이민족도 아닌 동족 간에 무슨 철천지원수인양 이렇게 피를 흘리며 대립과 질시를 반세기 넘게 계속하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장사도로 가는 뱃길! 뱃전에서 보는 다도해의 섬들은 농담이 다른 연두색 물감을 한 붓 한 붓 봄 바다의 캔버스에 바람을 찍어 어우러지고 있다. 무청처럼 갈라지는 봄 물결. 갈매기의 고공비행은 아픔과 갈등 속에 통일된 한반도 인권이 존중된 자유의 비행을 열망하게 한다.
신록은 섬 전체를 새롭게 물들이고 있다. 흙, 바람, 나무, 햇빛의 향연이 장사도에 쏟아진다. 연두색의 향연, 에메랄드빛 바다와 청잣빛 하늘이 닫힌 폐와 동공에 파고든다. 지금 내 육신 자유롭다. 하지만 포로수용소 유적지에서 정지된 잔상은 봄의 프리즘을 분산시키고 만다.
사람의 인성(人性)을 수성(獸性)으로 전복시키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 포로들의 아비규환이었던 수용소, 낮에는 태극기를 밤에는 인공기를 앞세워 질퍽거렸던 이념의 늪지는 또 다른 지옥과 천국이었다. 높은 지능의 소유자인 인간. 그 DNA는 사랑하는 일보다 고문하고 죽이는 흉기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고 있다. 철조망을 잘라 만든 곤봉, 어떤 종류의 쇠붙이건 강도(剛度)를 지닌 재료라면 갖은 수단과 기법으로 고문 살상 도구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잔악성에 혀를 두르게 한다.
‘아! 누가 인간을 선하다고 하였단 말인가? 저게 인간의 본성이란 말인가? 아니면 이념에 세뇌당한 공산당 좀비의 모습이란 말인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의 선물이 망각이다. 하지만 이곳의 전시된 흔적과 기록물은 아픈 기억의 파편을 되살려 다시금 인간의 악마성에 치를 떨게 한다.
장사도의 봄은 예뻤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하나가 되어 봄 속에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행인의 얼굴에 번지는 연둣빛 행복함은 섬 전체를 감싼다. 연신 눌러대는 셔터 소리. 순간의 행복을 추억으로 남기기에 바쁘다.
청마 유치환이 쓴‘행복’시비 앞에 선다. 사춘기 시절 이 시를 읽으며 가슴 두근거리는 연인에게 편지를 보내고 돌아서는 청마를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전날 포로수용소의 정지된 슬라이드의 잔상이 혼자만의 임의의 해설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자신만의 감상으로 옥죄고 있다. 아름답지만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마음, 오감이 마비된 듯하다. 마치 지난 삼월 두 번의 죽음을 맞는 동백의 향연처럼!
삼월 장사도의 봄은 동백꽃 천지라 하였다. 동백의 낙화를 알기에 더 처연한 마음이 전해진다. 초록의 생명 끝에 떨어져 버린 붉은 주검들.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포용과 수용을 거부한 남과 북은 아픔과 미움의 열매만 성숙시키고 굳어져 떨어진 주검만 수두룩하다.
계절의 변화는 분단을 뛰어넘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곱게 핀 선홍색의 해당화 한 무리가 아름다운 그리움을 몰고 온다. 꽃 진 자리에 다시 맺는 꽃봉오리를 보며 이 봄 해당화의 전령은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DMZ 너머 북녘땅 동해안에도 화려하게 물들고 있을 것이다.
분단을 만든 것은 무한 이념의 이기주의 상징이며 철 안 든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모두가 인정하는 이치를 모른 채 대를 잇는 우상화와 그네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허상은 언젠가는 무너진다. 두 줄기로 흐르는 한반도 엄마의 큰 강. 허상을 버리고 실제를 위해 하나 되어 흐른다면 태평양도 홍수가 날 것이다. 그 소원의 소실점은 수평선 어디쯤일까?
며칠 전 봄밤을 떠올린다. 늦은 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모내기가 한창인 시골 밤은 개구리 합창 소리가 요란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아이를 기다리며 밤하늘을 본다. 비온뒤 사라진 미세먼지 덕분에 별빛은 빈 운동장에 모래알처럼 쏟아진다. 고즈넉한 오월 한밤 전원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 개구리 소리도 별빛 반짝이는 아름다움도 음미하지 못한 채 분단의 현실에서 공부하는 기계로 경쟁에 지친 우리 아이들을 보면 짠하기만 하다.
요즘 아이들은 분단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통일은 언젠가 되겠지만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살기 힘든데 북한까지 먹여 살려야 하나요? 도발과 협상, 억지 주장으로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쥐고 흔드는 북한 정권이 혐오스럽다고 한다. 아이들의 논리도 이해가 간다. 너무 오랜 분단의 세월은 꿈나무들에게 희망의 불씨조차 망각하게 한다. 이 분단은 앞서간 사람, 지금 어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책이다. 이제 그 자책의 종지부를 찍고 우리 아이들 시대에는 희망과 행복, 여유가 가득한 하나 된 어머니 품에 안기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지구촌은 모든 나라가 같이 사는 하나의 아파트이다. 한 층에서 불이 나면 그 여파는 다른 층으로 옮아간다. 이른 현실에 하나가 되어도 모자랄 형편에 같은 민족끼리 핵을 두고 자중지란을 일삼는 모습을 보면 강대국의 간섭에 어부지리나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몰려온다. 지금 한반도는 정치와 경제 논리, 이권을 염두에 둔 주변국의 개입에 따라 통일 환경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외부세력 간섭을 청산하고 우리는 한민족이다 라며 손 내밀 때는 언제일까? 오월 장사도에서 꾸는 백일몽이 아닌지, 이런 고민을 아랑곳하지 않는 수목의 향연은 제 놀 것 다 놀고 익살스럽게 오고 있다.
염원의 전령, 부푼 폐 속에 넣는 녹색 공기를 넣는다. 대륙 간 탄도미사일 발사, 수소폭탄 실험 성공! ‘핵만이 우리의 살길이다.’실성한 자의 망언이 지친 두꺼비의 할딱거리는 환청이 되고 쌓이는 것은 단절과 불신뿐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들어본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모처럼의 거제도 방문길. 포로수용소 유적지의 정지된 아픔은 여전히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는 슬라이드가 된다.‘끼룩, 끼룩’ 멀어지는 장사도를 뒤로 뱃전을 날아드는 갈매기들. 전쟁의 상처와 휴전의 긴장, 분단의 아픔. 그 아픔은 영원히 남는다. 그러나 분단이 소멸하는 순간 상처는 새 생명의 이름으로 하나의 형질로 변한다.
배가 지나는 바닷길은 갈라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한다. 분단된 한반도 엄마의 강! 외면할 수 있으나 피할 수 없는 원죄이며 상처이다. 하지만 나아가면 하나로 될 수 있다. 우리의 분단 이 치유는 서로가 자기의 상처를 정확히 응시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 실체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모두이다.
얼마 있지 않아 현충일이다. 메마른 현충원 묘비에 아들 잃은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조각배로 흐르고 있다. 다시는 더는 아들 잃은 엄마 눈물에 조각배가 띄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사도의 봄 포로수용소 유적지의 암울한 빛을 다음 슬라이드로 넘기며 상상 그 영원하고 유효한 아날로그의 가성으로 우주에 손을 모아 본다.
‘아이들아! 푸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 같은 깨끗한 마음에 새겨라. 이념을 넘어 분단을 허물고 푸른 대지를 만들어 줄게. 그때 너희들은 한반도의 산을 축구공처럼 뛰어다니며 통일된 조국에서 고추잠자리 메뚜기와 동무하고 세계를 꿈꾸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