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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교단의 어처구니없는 일들

교단을 떠난지 4개월이 되어간다. 무한 자유로움에 한껏 취하는 나날이지만, 더러는 교단에서의 일들이 생각나고 그리워지곤 한다. 대개는 학교에서 해온 일들- 백일장 인솔이며 학교신문과 교지나 문집제작 지도의 일들이다.막상 그런 일들로부터 멀어지고보니 괜히 명예퇴직했나 하는 일말의 후회랄까 하는 기분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그리움에 불쑥 끼어드는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있어 깜짝 놀라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문인 교사가 아니라면 원천적으로 느끼지 못했을지 모르는 일들이 아닐까 싶다. 바로 저서에 얽힌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저서 증정에 관한 교원들의 무심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든 거의 해마다 저서를 출간했다. 그때마다 함께 근무하는 기념으로 교장⋅교감을 비롯한 동료 교사들에게 저서를 증정했다. 주로 도회지 큰 학교에서 근무했기에 많은 책이 필요했다. 행정실까지 포함한 교직원 수가 130명이나 되는 학교도 있었다. 그 학교에선 6년 근무하면서 7권의 책을 펴냈다.

그리 했어도 답례는 없었다. 친목회 규정에 없다는 이유였다. 동료 모두가 아닌데 나만 유독 글쟁이 교원이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언제인가 482쪽짜리 평론집 증정때 방명록과 함께 십시일반 모금한 소정의 축하금을 전달받은 적이 있었다. 예술가이기도 한 후배 교사가 동료들을 일일이 만나러 다니며 거둔 ‘결실’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 학교 교무실엔 캐비넷 위로 이런저런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내 책이 있길래 빼보니 전출해간 동료가 주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증정한 책을 발령받아 떠나면서 버리고 간 것이었다. 나는 심한 불쾌감과 함께 앞으로 증정할지 그만둘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랬을망정 나의 저서 증정은 계속되었다. 2009년부터 5년간 근무한 학교에선 모두 5권의 책을 펴냈다. 그런데 웬일인가, 친목회에서 축의금을 전달해왔다. 그외에도 각 실이나 과별로 소정의 축의를 전해왔다. 친목회 규정에 없는 건 전임지와 같은데 영 다른 모습이었다. 교장이 정년퇴직을 하면서 시들해지긴 했지만, 32년 교단에서 저서 증정에 대한 가장 큰 답례였다.

출판기념회를 치르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었다. 가령 지난 해 회갑기념 문학평론집 출판기념회의 경우다. 1999년 이후 16년 만에 가진 큰 행사 출판기념 회갑연이었다. 요즘 누가 회갑 잔치하냐며 눈 홀길 이도 있을 법하지만, 글쟁이를 핑계삼아 ‘저지른’ 일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전체적 소감은 ‘받고도 갚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건 좀 뜻밖이었다. 예컨대 내가 조문이나 자녀 결혼식 등 애경사에 직접 가거나 부조를 한 경우라면 그들은 이번에 그걸 품앗이해야 맞다. 아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애경사는 품앗이 아닌가?

특히 직장 동료는 친소(親疎)를 떠나 거의 날마다 보는 사이니까 조문이든 결혼식이든 무조건 그냥 부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임지에서 필자의 축하(조문)와 함께 부조금을 받고도 정작 회갑기념회엔 나 몰라라 한 교원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전화 등 아무 연락 없이 행사장에도 오지 않는 그런 교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남녀노소 불문이니 ‘인간의 도리’가 전방위적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닌지, 솟구치는 강한 의구심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러고도 그들이 학생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교원들인지 회의를 떨칠 수 없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그 다음 일이다. 나의 출판기념 회갑연에 코빼기는커녕 전화 한 통 없던 그들이 자녀 결혼식을 알려왔으니 말이다. 교원들은 아주 평범한 삶의 방식인 그런 품앗이조차 모른단 말인가. 아예 출판기념회는 조문이나 자녀결혼식 같은 애경사가 아니라고 해석한 것일까?

나도 모르게 여러 날 생각이 이어졌다. 마침내 그들 자녀 결혼식에 축의금을 냈다. 예식장 가서 그들을 직접 볼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나라도 인간의 도리를 다하자는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혹 교단을 떠난 후유증일까. 막상 교단을 떠나고 보니 별의별 생각이 마치 그리움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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