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수업에서 교과서 내용이 자기의 주관적 판단과 다를 때 이를 임의로 수정하거나 삭제해서 가르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교사의 가르칠 자유의 문제와 함께 종종 논의가 된다. 특히 제7차 교육과정에서 정부가 고시한 교육과정을 지역 및 학교에서 편성·운영할 수 있도록 하므로 이 문제에 대한 바른 이해가 더욱 필요하게 되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지역 및 학교와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운영권을 보장하고 교과서 외의 교수-학습자료 및 내용을 선정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장 교사들은 교수-학습자료나 내용을 교육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선정, 활용할 수 있다.
그 교육적 판단이라는 것은 우리 나라의 헌법이념과 교육의 이념 및 본질에 적합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고시한 ‘교육과정’에서 학교급별 지침, 각 교과의 성격, 목표, 내용, 방법, 평가 등의 지침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교과서 이외의 학습자료나 내용을 선정할 때 교육의 이념과 본질·헌법정신에 맞는 내용이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교육과정’의 기준에 맞아야 함은 당연하다.
교수-학습자료와 내용을 선정할 수 있다고 해서 교과서 내용이 자기의 주관적 판단과 다를 때 임의로 수정·삭제해서 가를 칠 권리가 있는가가 문제이다. 이 문제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학문의 자유가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므로 보통교육기관인 초·중등 교사의 개인적인 연구·발표·출판 등의 활동에는 보장되지만 학교 교육활동에서 학생의 교수-학습활동을 하는 직무행위에까지 보장되는가의 여부이다. 그리고 고등교육기관인 대학 교원의 교육·연구활동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가 문제이다.
사건의 경위 (사건-재심위 91-79)
김철수(가명) 교사는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근무당시에 임의로 교과서를 삭제지도하고 수업시간에 ‘남누리 북누리’라는 편향적인 노래를 학생들에게 지도하는 행위를 사유로 국가공무원법 제56조 및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위반으로 정직 3월의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사유가 일부 학부모들의 오해로 빚어진 사태와 관련하여 그 처분이 객관적인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채 내려진 것으로 부당하니 취소하여 달라는 청구를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하였는데 재심위는 이 청구를 기각하여 원처분을 인정하였다.
청구인 행위와 재심위 판단 1) 김 교사는 1991년 사회교과시간에 중학교 1학년 사회교과서(70쪽 9-11행)의 “북부지방에 공산집단이 들어선 이후로는 모든 활동이 통제되고 군수산업 위주의 생산활동에 치중하여 주민생활이 어려워졌으며 민족의 이질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부분을 삭제 지도하였다. 이에 대해 김 교사는 재심청구이유로 교과서 수정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잘못은 인정하나 “그 내용이 북한과의 체육·문화·경제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 사회의 상황과 일치되지 않은 내용이어서 학생들에게 객관적인 현 사회 상황에 맞게 가르친 것으로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PAGE BREAK]이에 대해 재심위에서는 청구인이 주장하는 현 사회 상황이란 그 근거의 제시가 없어 청구인의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할 것인데, 북한지방에 대하여는 그 사회체제의 특성 때문에 실상을 알기 위한 자료를 얻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지도하는 교사로서는 ‘확인되지 아니한’ 사실을 다룸으로써 학생들에게 인식의 혼란이 오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할 것임에도 청구인이 임의로 교과서를 수정하여 지도한 것은 교과용 도서의 수정에 관한 권한이 교육부 장관에게 있음을 규정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에 위반된 것으로 결국 국가공무원법 제56조의 법령준수의무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였다.
2) 김 교사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남누리 북누리’라는 노래를 지도하였다는 징계사유에 대하여 재심청구사유로 김 교사는 “그 노래는 굿거리 장단민요를 지도한 것으로 통일의식을 교육한 것이기 때문에 징계사유로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재심위는 청구인이 수업시간에 여러 가지 의식화 노래를 가르쳤다는 학부모들의 진술은 차치하더라도 그 노래의 가사 가운데에는 ‘남녘 땅 북녘 땅 빼앗긴 우리 누리’ 등 분단의 의미와 통일 의지를 왜곡할 우려가 있는 불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결국 개인적인 편견을 교육한 것이고 이는 교사로서 성실치 못한 근무자세라고 판단하였다.
3) 김 교사는 학교의 특별활동 영역의 행사활동으로 지역인사 초청 통일안보 강연도중 전교생 앞에서 강연자에게 북한체제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말라며 강연을 방해했다는 징계사유에 대하여 김 교사는 “진행발언을 하겠다는 것은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재심위의 판단은 당시 강연 후 질문하라는 교장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에 의해 복도로 끌려나가기까지 강연자와 언쟁을 벌인 것은 교사로서의 품위를 크게 손상시킨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4) 김 교사는 당시 ‘의식화 교육교사 추방 범면민궐기대회’ 현장에서 의식화 교사로 지목된 관련 교사들과 함께 해명을 하려 했으나 주민, 학부모로부터 비난을 받는 등 공무원으로서의 체면과 위신을 손상시켰다는 징계사유에 대하여 “사태의 악화를 막아보려는 정당성 있는 행동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재심위는 사전에 교장의 허락을 받지 아니한 잘못은 있으나 그것으로서 교사로서의 품위를 손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5) 김 교사는 이 사건으로 전보 조치되자 이에 항의하여 인사발령통지서의 수령을 거부하고 임지 학교에 부임을 지연시켰다는 징계사유에 대하여 “준비시간이 필요했고 교육청의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재심위는 그 과정의 조사기록으로 보아 청구인의 변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결정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결정요지는 객관적인 현 사회상황에 대한 근거의 제시도 없이 교과서 내용이 사회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교과서를 삭제 지도한 것은 교사의 주관적 편견에 따른 교육이어서 교과서 수정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이며 김 교사가 주장하는 통일관련 굿거리 민요 ‘남누리 북누리’라는 가사 내용에 분단의 의미와 통일의지를 왜곡한 불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를 지도한 것은 교사로서 성실치 못한 근무자세라고 판단하여 청구인의 주장 중 일부를 수용한다하더라도 그 소위에 대하여 원처분은 상당하다고 판단하여 청구를 기각하였다. (재심위 결정 91-79, 결정문집, 1992,pp.13-16)
[PAGE BREAK]맺는 말
넓은 의미의 학문의 자유는 학문연구의 자유,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 교수의(가르칠) 자유, 학문을 연구하고 발표하기 위한 집회·결사의 자유까지를 포함한다. 학문의 자유는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는 자유이지만 특히 대학의 자치를 가능케 한 것으로 학문의 연구와 교육 및 사회봉사의 이념을 가진 대학은 그 기능상으로나 고등교육이라는 성격, 학생이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이라는 점에서 교수의 개인적 학문활동이나 학생과의 교육·연구활동에서 이 모든 자유가 보장된다.
그리고 초·중등교원도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연구결과를 학회나 논문으로 발표하고 연구결과를 개인의 출판물로 발행하는 자유는 당연히 보장된다. 다만 학생과의 교육활동에서 교사는 학생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므로 사회적으로 검증된 보편적 진리를, 교육받을 학생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교육내용을 가르칠 권리는 제한된다는 것이 일반적 학설이다. 그것은 보통교육기관의 교육의 이념과 성격, 학생들이 성장과정에 있어서 가소성이 크고 비판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교사가 학생에게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점, 교육의 기회균등을 도모할 필요에서 지역간·학교간 전국적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역마다, 학교마다, 가르치는 교사마다 다른 내용을 교육하게 되고 개인적 편견을 교육하게 되는 편향교육의 결과를 초래하여 보편적 진리를 교육해야 할 보통교육기관의 성격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진리를 교육받을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즉, 교사 개인의 학문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학생과의 관계에서 교육활동에서는 학생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교사의 직무상의 가르칠 권리보다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7차 교육과정에서 지역과 학교의 교수-학습자료 및 교육내용을 선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은 당연히 헌법과 교육기본법의 교육의 이념과 목적, 그리고 이에 대한 구체적 지침으로 법령의 성격을 가진 정부의 ‘교육과정’의 지침과 내용에 적합한 자료나 내용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학교나 교사는 편향교육을 하게 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 수정을 신청하여 수정된 결과를 가르쳐야 한다.
현행법에서는 1종 도서인 경우 교육부장관이 수정할 수 있고, 2종 도서인 경우에는 교육부장관이 저작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절차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법령준수의무와 성실의무를 위배한 법적 책임이 주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