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수업을 도입할 때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즉, 주5일제 수업을 도입하면서 산업화 때문에 그 동안 해체되었던 가정을 복원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자면 모든 것을 가정에 일임하고 국가와 학교는 가정을 간섭하고자 한느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본이 20년쯤 준비하여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주5일제 수업을 도입하면서, 우리 나라도 주5일제 수업이 현안이 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토요일 수업 서너 시간을 평일로만 옮겨도 주5일제 수업이 가능하겠다고 하면서도, 주5일제 수업은 실천되지 않을 머나먼 꿈으로 여겼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주5일제 수업을 제도로 받아들여, 변형된 형태이지만 이미 토요일을 ‘책가방 없는 날’로 정한 학교도 있었고, 토요일을 ‘현장 학습하는 날’로 정하고 학생들이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한 학교도 있었다. 그러던 것을 이제 정부는 주5일 근무제 도입과 병행하여 2003년 전국적으로 월1회씩 주5일제 수업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며, 언젠가는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주5일제 수업의 성격·목적 분명히 해야
따라서 주5일제 수업을 사회와 가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지금부터라도 절실히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도입하여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초등학교 영어 교육’이나, ‘교실 선진화 사업’과 같은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먼저 주5일 근무제와 주5일제 수업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왜 실시하려고 하는지 그 성격부터 분명히 정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시스템을 추구할 것이며, 가정에서 학부모가 어떤 식으로 주5일제 수업을 소화할 것인지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을 자본주의 생산 도구로 보고 주5일 근무제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 질 좋은 노동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 결국 주5일 근무는 일주일 중 하루를 더 쉬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나머지 5일 동안 인간을 효율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하여 계속 사람값을 따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맥락으로 주5일제 수업을 정의하고, 휴일을 효율과 생산성으로 채우려 한다면 주5일제 수업은 이미 절반은 실패하고 시작하는 셈이다. 실제로 주5일제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어느 시범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는 날에도 가정에서 다양한 체험학습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른바 ‘재택 학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박물관과 공원, 어느 관공서를 다녀와 보고서를 써내라고도 하고, 가족 여행을 떠나라고 권하기도 하며,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해 직접 방문하여 확인해 오라고도 한다. 교과과정에 나오는 다양한 소재를 노는 날 직접 체험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휴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학생들에게 계획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게 하고, 등교하면 계획 실천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주5일제 수업으로 남는 시간을 가족의 몫으로 돌려야 하는데도, 학교에서 휴일 일정을 기획하였으니 가족들이 단합하여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셈이다. 이렇듯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 일요일을 알차고 생산적이며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학교에서 교사를 인솔 책임자로 임명하고 학부모를 일일 명예 교사로 세워 휴일까지 현장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말하자면 아이들이 그냥 노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학교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사이버 가상 학교를 열고 집에 있는 아이를 휴일에도 관리하겠다고 하였다. [PAGE BREAK]집에서 새를 기르거나 나무와 꽃을 키우거나 어디로 떠나는 것은 학생의 몫이어야 하며, 가족끼리 상의하여 자유로이 결정할 일이다. 그런데도 아직 학교는 그 아이와 그 가족의 다양성과 자주성, 창의성을 믿지 못하고 꼭 간섭하려 든다. 새를 키우면 관찰 일기를 써야 하고, 책을 읽으면 독후감을 써야 하며, 여행 결과는 포트폴리오로 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학교 지시에 따라 아이들에게 더 좋은 학습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고, 그러자면 사교육비라는 이름으로 엄청나게 큰돈을 들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계획한 대로 여행해야 한다.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고,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행동한다. 결국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부모 협조라는 말은 학교 지시를 거역하지 말고 학부모들은 돈과 시간을 내라는 소리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요즘도 학부모들은 맞벌이냐 아니냐를 떠나 주5일제 수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 학교 뒷바라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로서 학교의 각종 행사에 참여해야 하며, 참여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사서 보내야 할 때도 있고,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를 해결하여 자녀를 도와야 하고, 아이가 봉사활동 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아이 대신 여기저기 관계기관을 수소문해야 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될 수 있다
지금 학부모들 중에서 주5일제 수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 것도 결국 부모가 아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여건, 아이들이 홀로 설 수 있는 여건을 국가에서 구조적으로 배려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무조건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5일제 수업이 잘못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깊어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방치된 채 그 시간을 대충 허비하고 있을 테고, 부자는 자녀가 확보한 시간을 정교하게 계산하여 새로운 지식과 정보로 무장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과 같이 놀이 문화와 놀이 공간이 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난한 집 자녀들 대부분이 텔레비전 앞과 골목에서 시간을 보낼 때, 부잣집 아이들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이것저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녀가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자기 자녀를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선진국 부모처럼 자상한 부모가 되지 못한다.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며 제대로 뒷바라지하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과 놀아줄 사이 없이 일을 해도 먹고살기 힘들며 노후를 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녀를 배려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충분히 마련해 놓지 않고, 주5일제 수업이 도입되면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은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기 전에, 국가가 가정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부터 따져 보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정교한 사회 안전망을 갖출 수 없다면, 주5일제 수업을 도입할 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학교와 국가가 학부모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지금 상황만으로도 우리 나라 학부모들은 자기 능력 이상으로 학교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고 있는 편이다. 현 시점에서 국가는 오히려 한 걸음 나아가 어떻게 하면 오늘날 학부모들이 본능처럼 살아왔던 일상적인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PAGE BREAK]일본은 주5일제 수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연중 학습량을 확실히 줄였으며, 난이도를 조절하여 3학년 때 배우던 것을 뒤로 미루어 4학년 또는 5학년에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수업일수를 줄이면서, 그 나이 아이들이 누려야 할 ‘삶의 질’을 확실히 보장하려 한 것이다. 만약 우리 나라가 일본처럼 실질적으로 주5일제 수업의 정신을 살리지 못하면, 아이들이 방학이면서도 방학 숙제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같이 기현상만 벌어질 것이다.
해체된 가정을 복원하는 계기로 삼자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 나라가 주5일제 수업을 도입할 때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즉, 주5일제 수업을 도입하면서 산업화 때문에 그 동안 해체되었던 가정을 복원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자면 모든 것을 가정에 일임하고 국가와 학교는 가정을 간섭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자가 가정의 주인, 삶의 주인으로서 사람이란 일하며 살고, 일은 즐거운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할 수 있다면 주5일제 수업은 그냥 부모와 아이들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속에서 부모들이 근대 산업사회 방식이었던 주입식 학습, 획일 학습, 암기위주 학습이 이제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주5일제 수업 도입 이후 학습량이 줄어도 아이들이 단편적인 지식보다 더 큰 힘을 비축해 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때쯤이면 단편적인 지식 하나둘쯤 덜 외워도 좋다고 다른 학부모들을 자신 있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