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중추절, 중추가절 등 부르는 명칭만큼 먹을 음식도, 민속놀이도 풍성했던 명절이 추석이다. 이제는 추석이라 해서 따로 먹거리와 놀거리를 찾아다니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우리 선조들에게 추석은 마음껏 먹고 놀고 즐길 수 있는 커다란 '축제'였다.
'과거급제 점치는 가마싸움
옛날 서당 교육은 훈장을 초빙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명절이 되면 훈장도 고향에 가서 차례와 성묘를 지내게 되므로 서당도 며칠을 쉬곤 했다. 이 기간 동안 학동들은 원놀이와 가마싸움을 하며 자유롭게 연휴를 즐겼다.
원놀이란 학동들 중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재치 있는 사람을 원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동들은 백성이 되어 원님의 판결을 받는 놀이. 오늘날 모의 재판과 유사한 형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원님은 사건을 잘 해결해 칭송 받지만 서투른 원님은 백성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다.
가마싸움은 학동들이 가마를 만들어 이웃마을이나 이웃 서당의 학동들과 대결을 하는 놀이로, 가마를 끌고 달려서 가마끼리 부딪혔을 때 부서지는 쪽이 지게 된다. 가마싸움을 이긴 편에서 그 해 과거 급제자가 나온다는 속설도 있었다니 예나 지금이나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한결같은 모양이다.
'벌초하려 몇 십리 걷기도
조상의 무덤에 가서 잡초를 베어주는 벌초(伐草)는 예로부터 추석 고유의 풍습 중 하나였다. 요즘처럼 멀리 떨어진 산소를 찾아가 벌초하는 일이 과거라고 없었던 것은 아니다. 풍수설에 따라 '명당자리'라는 몇 십리 먼 곳에까지 가서 조상의 묘를 쓰는 경우도 많았고, 또 묘를 쓴 다음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묘지가 집근처가 아닌 먼 곳에 자리잡기도 했다.
이런 경우라 해도 추석에는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효성이자 도리. 한가위 때에 성묘를 와서 벌초를 하지 않은 묘가 있을 경우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임자 없는 묘라 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됐다.
'농사 잘 했으면 한 턱 내야지
추석날 차례를 마치고 난 뒤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소놀이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씌운 뒤 뒷사람은 새끼줄로 꼬리를 만들고 앞사람은 막대기 두 개로 뿔을 만들어 소의 시늉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소를 끌고 부농의 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가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고 외친다. 주인은 술과 떡 등을 차려 사람들을 대접하고 풍물을 펼치며 한참을 즐긴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다니며 해가 질 때까지
어울려 논다.
소놀이를 할 때는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소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번 상머슴으로 뽑히면 다음해 머슴 새경을 정할 때 우대를 받게 된다.
'명절 뒤엔 며느리에게 특별휴가
차례상 준비에, 선물 마련에 때마다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주부들. 세월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자들에게 명절이 힘겹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조차 할 수 없었던 과거 여성들의 경우는 두말 할 나위도 없었으리라.
추석이 지난 다음에는 '반보기'라 해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일자와 장소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풍습이 있었다. 친정에서는 추석이 되기 전 미리 사돈댁에 편지를 띄워두었다가 추석 이후로 날을 잡아 시집간 딸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도 친정으로 직접 갈 수는 없고 모녀가 시집과 친정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서로 장만해온 음식을 먹으며 한나절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반보기란 이처럼 중간에서 상봉했기 때문에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