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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가 있는 풍경

김삼호 | 전남 광양 골약초 교감


고향!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곳, 우리들 그리움의 깊은 밑바닥. 하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는 잘못을 저지른 후 아버지 앞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고향은 언제나 저 만치서 아련한 추억으로만 서 있다. 어느 땐가는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잠 못 이루는 밤을 누구나 한 번쯤은 맞이했으리라.

고향을 생각할 때 어머니 품속같이 따스하리라는 것은 혼자의 바램뿐이고 너무나 오랜만의 방문이라 어색하고 쑥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홀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몇 명 있는 고향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는 편이 못되었고 더구나 승진이 늦어 행여 내 직위를 물어오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워 고향 사람들을 슬슬 피하고 다니는 처지였다. 그러나 고향은 고향인지라 가끔 꿈자리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고향의 꿈을 꾸는 날은 고향의 그리움으로 내 마음이 산산 조각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럴 때는 아내를 달래어, 아니 아내를 방패막이로 삼아서 고향을 찾는다.
풀 죽은 모습으로 어릴 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묻어 있는 동구 밖의 쉼터, 내 어릴 때의 깔깔 웃음이 남아 있는 뒷동산, 그리고 마을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가슴속이 이내 차분해지면서 울적하기까지 하다. 푸르게 우거져 있어야 할 대나무 숲은 죽공예품의 사양화를 증명이나 하듯 ‘돈 버짐’ 앓는 머리처럼 마구 죽어가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배나무를 파 해치고 텃밭을 일구어 놓아 청죽에 대한 자부심과 부촌이라는 인상은 없어지고 꾀죄죄한 느낌만 들뿐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우거진 수풀이었다. 내 어린 시절엔 사람의 키를 넘는 나무가 흔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나무는 땔감으로 모두 베어 썼으며 나무 뿌리까지도 팽이로 파서 땔감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어려서 자란 집으로 가보았다. 언제나 나에게 푸른 꿈을 선사했던 아름드리 미루나무는 베어지고 그 자리에는 엉성한 나무 등걸만 썩어가고 있었다. 중학시절 십여리 떨어진 읍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읍내에 사는 아이들의 텃새가 몹시 심했던 시절이었다. 하교 길에 조심조심 읍을 빠져 나와 아담한 ‘더터리 고개’를 넘으면 어머니 품속같이 정답고 포근한 우리 마을이 들판 저편에 그림같이 펼쳐 있었다. 마을의 형상이 황소가 드러누운 모양이라 해서 ‘와우터’라고 이름하며 또한 ‘솟쿠리터’라고도 이름한 13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꿈속같이 평안하고 아름다운 우리 마을!
마을이 보이면서부터 긴장은 풀어진다. 저기는 형덕이 집, 이쪽에는 석순이 집, 그리고 대밭 가에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는 미루나무가 있는 곳은 우리 집이다. 그 미루나무는 언제나 나의 자랑거리였다. 내 어린 시절 나의 꿈을 키워주던 우뚝 솟은 미루나무! 마음이 우울할 땐 청운의 큰 뜻을 당당히 펼친 듯한 그 나무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고 가을이 되면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불어오는 바람에 잘랑잘랑 내는 그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 그래서 멀리서도 가장 잘 보였고 까치가 귀했던 시절 언제나 까치가 집을 지었던 그 나무. 내 꿈이 머물렀던 그 미루나무가 없어진 것이 못내 서운하다.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대밭 가 팽나무를 쳐다보니 이게 웬 기쁨인가! 거기에는 까치집이 두 개나 걸려있지 않는가! 내 어릴 때 미루나무에 집을 지었던 그 가치의 손자, 혹은 그 손자의 손자, 그 몇 대의 후손 까치가 지금 저 팽나무에 둥지를 틀지는 않았는지? 그때의 소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나이로 몇 대 후손의 까치가 지은 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빠른 것이 세월이라 했던가. 까치집! 내 어릴 땐 행운과 평화와 기쁜 소식의 상징인 까치가 날아오면 우리들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카약! 카약! 카약!’ 힘차고 투명한 그 까치 소리를 들으면서 삶의 생동감을 느끼고 미래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흐뭇한 마음을 안고 마을을 가로질러 ‘여싯머리’로 향했다. 어린 시절 너무나 황폐했던 땅, 밤이면 여우가 찾아와 기분 나쁜 울음을 울고 새로 만든 묘지에 구멍을 파면서 시체를 염탐하던 곳, 6.25 전란 중에 죽은 사람들을 많이 묻어 두었던 곳, 그래서 한 낮이라 해도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던 곳이다. 그러했던 ‘여싯머리’에도 소나무 밤나무 사과나무 등이 울울창창하여 마치 하나의 조용한 공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은 계속 초라해 지고 있지만 이 동산은 숲으로 우거지고 있다. 쓸쓸한 마음에 그나마 위안이 찾아온다.
숲 속에 자리한 아내와 나는 고향의 냄새에 취해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니 고향의 품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소란스러움이 시작되었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찌르레기 떼가 몰려왔다. 해맑은 목소리로 제법 쩌렁쩌렁한 소리로 사방을 어수선하게 날아다녔다. 벌레를 쪼으려고 그 뒤를 곡선을 그으며 나르는 놈, 암수가 한데 헝클어져 수풀 속으로 숨는 놈, 괜스레 상대방을 쪼으려는 듯 장난을 거는 놈, 그야말로 옛 시절 흥청대던 시골 장터 같았다. 기껏해야 무릎 정도의 가냘픈 나무 몇 그루였던 이 동산이 이제는 반 아름드리 나무로 뒤덮였고 이렇게 많은 새떼들이 찾아와 우짖으니 이곳이 정녕 내 고향 ‘여싯머리’가 맞는지 아니면 꿈속에서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인지….
새소리에, 새들의 희롱하는 장난에 취해 넋을 잃고 있으려니 저절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무더위 속에서 풀베기 작업에 찌들고 있을 여름의 끝 무렵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빨간 고추잠자리가 마당 가득히 날아다니던 아름다웠던 그 풍경. 지금 내 머리 위에서 삶의 전율을 느끼게 하며 날아다니는 찌르레기들은 지난날 고추잠자리의 영혼들이 아닐까? 저만큼 떨어진 밭에서 김을 매던 중년의 여인은 새소리에 놀라 ‘훠이! 훠이!’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안타깝다. 새들의 지저귐 속에, 새들의 희롱하는 장난 속에 파묻힐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짧은 인생에 몇 번이나 찾아올 것인가?
새들이 날아다니는 동안 모든 게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딱딱하던 밭의 흙은 부드러워졌으며 치렁치렁 늘어뜨린 사과나무 가지는 고염 같은 작은 열매를 흔들며 상큼한 냄새를 뿜어내 새들의 놀이를 축복해 주었고 하얗게 핀 밤꽃은 향 짙은 밤꿀을 뿌려주었으며, 엉거주춤 서있는 소나무들은 새로 돋아난 잎들을 움직여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새와 나무와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초여름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을 때 하늘은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도심의 쇠창살 같은 딱딱한 생활에서 벗어나 미풍을 마시며 젊음을 만끽하는 한 쌍의 범나비가 되어 5월의 푸른 동산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름다울 진저! 새와 나무와 인간이 같은 느낌으로 호흡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 시간, 세파에 떠밀리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자연과 동화되어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은 우리의 생애에 얼마나 될까? 자연은 진실로 위대한가보다. 아니, 고향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인가 보다. 내 어릴 때 그렇게 황폐했던 ‘여싯머리’ 동산이 이렇게 푸르게 뒤덮여졌고 그 많은 찌르레기들이 해맑은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음을 터뜨리며 쫓고 쫓기고 부비고 노래하고 상큼한 미풍이 이는 꿈의 동산으로 변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고향이 좋다. 아니, 나무가 좋다. 풀이 좋다. 새들이 좋다. 그리고 서쪽 하늘을 붉게 태우는 저녁 노을은 너무나 좋다. 이 계절, 이 시간쯤이면 모두가 선한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몇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광폭한 치한도, 남의 돈을 몽땅 긁어먹고 이 나라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던 어느 시커먼 배불뚝이 사장도 쇠창살 틈으로 멀리 보이는 붉게 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엄숙한 마음으로 고개 숙인 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다 직장 동료나 친구와 다투었던 사람들도 스스로 얼굴을 붉히면서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아집에 빠져서, 자기 욕심에 빠져서 오직 나의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고향은 가르친다. 멀리 보고 살라고, 긴 안목으로 살라고, 그리고 고향을 찾으며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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