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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이 사는 법

박노영 | 강원사대부고 교사


몇 년이 지난 것 같다.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길쭉한 얼굴에 반 들창코, 비루먹은 말처럼 여윈 체격에 항상 눈곱이 붙어 있는 게슴츠레한 눈을 가진 녀석이었다. 나보다 잘 생겼다거나 부티가 난다거나 멋이 있는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녀석이었다. 연 초에는 그래도 녀석 앞에 서서 대학을 보내보겠다고 침을 튀기며 열을 냈었다.
해가 지면 옆에 앉혀 놓고 “녀석아 최선을 다해 보는 거야. 계획표를 세워 놓고 앞만 보고 뛰는 거야”하면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꿈이 담긴 얘기를 해주었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아무 대꾸도 없이 늘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난 녀석이 바보가 아님을 봄 소풍날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녀석 앞에서 늘 내가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아침 일찍 조그만 트럭을 타고 중도 배 나루터에 도착한 녀석과 또래는 무지막지한 짐을 내려 배에 옮겨 싣는 것이었다. 나는 여태껏 만져보지도 못한 앰프며 이상하게 생긴 기타 등을 담임인 내게 인사도 없이, 아니 아주 무시한 채 열심히 옮겨 싣는 데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 때 녀석의 눈에는 눈곱이 없었으며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주변머리 없는 나는 녀석의 눈을 보고 무척 놀랐다. 녀석은 마치 봄 소풍을 위해 태어났거나, 아니면 봄 소풍을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저 녀석이 저 길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더욱 추하게 늙고, 머리카락도 훨씬 적을 즈음 한 잔 술에 몸을 맡기고 마이크를 잡았을 때, 반주를 해주면서 나의 그 잘난 노래 솜씨를 비아냥거리지나 않을까?’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강을 건넜다. 그런데, 녀석은 나를 완전히 실망시켰다. 녀석이 드럼을 쳤는데, 음악에 무지한 내 귀에도 그것은 리듬이 아닌 깡통소리에 불과했다.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때 내가 녀석을 완전히 무시하는 결정적인 말을 했다는 것이다.
“녀석아, 넌 안 돼, 네 머리로는 음악을 할 수 없어”라고 점잖게 잘라 말했던 것이다. 나의 무시하는 말을 듣고 녀석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드럼 치기를 그만두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속으로 “어, 괜찮은데”라고 약간 감탄했다. 나는 저만할 때 마이크는 고사하고 숟가락 들고 노래 한 번 해 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런 용기조차 없었다.
지금 저 나이에 저 정도라면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다. 잠시 뒤에 하숙하며 눈치 밥 많이 먹은 용철이가 마이크를 잡더니 “다음은 훌륭하시고 잘 생기셨으며, 우리들의 마지막 영웅이신 담임 선생님을 소개합니다”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뒤이어 많은 녀석들이 ‘아버지’하며 악을 썼다. 나는 잽싸게 어느 지하실 주점에서 노래 부르던 생각을 했고, 그 중 가장 많이 부르고 자신 있는 ‘18번’을 반주 없이 내뽑았다.
딴에는 녀석에게 지지 않으려고 목청을 돋워가며 악을 썼다. 가까운 곳에서는 ‘어쭈!’, 좀 먼 곳에서는 ‘야아!’, 아주 먼 곳에서는 ‘와아!’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노래를 끝냈고, 곧이어 어느 촌놈이 앙코르를 외쳤다. 나는 또 한 번 ‘어쭈!’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부터 생겼다. 수업 시간에 들어가 강의를 시작하면 채 5분이 안되어 녀석은 자기 시작하는 거였다.
녀석의 자는 폼은 선생인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그런 자세였다. 기가 막히게도 취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녀석은 잠을 잤다. 그래도 몇 번은 주의를 주고, 타이르고 어르면서 강의를 했으나 녀석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나는 급기야 녀석과 타협을 하게 되었고, 부모님을 모시고 오게 해 진학포기란 결론을 내렸으며, 녀석의 꿈인 드럼을 공부하게 해주었다.
녀석의 드럼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그 날부터 녀석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의 시간에는 어쩔 수 없었다. 강의가 시작된 지 빠르면 2분, 늦어야 5분 이내에는 결코 자고야 마는 것이었다. 나는 녀석을 ‘잠보 1호’로 지정한 지 한 달도 못되어 ‘도사님’으로 승격시켰으며,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인사를 했다.
“도사님, 저희 속세의 무리들은 지금부터 대학을 가기 위해 발광을 해 보겠습니다. 주무시는데 불편하시거나 방해가 되더러도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사를 받은 ‘도사님’ 녀석은 뜻 모를 웃음을 질질 흘리다가 미처 거두지도 못 한 채 잠이 들었다. 녀석의 모습은 완전히 현실을 초월한 도사님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을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지극히 모시면서 강의를 해야 했다. 봄 소풍 때 당한 무시를 녀석은 그렇게 잔인하게 복수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녀석이 어떻게 해서든 잘되기를 빌었다. 시골에 조그만 밭뙈기를 가지고 있는 촌로가 어느 날 갑자기 임자를 만나 수 억 원대의 재산을 챙기고 팔자 걸음을 걷는 횡재가 녀석에게도 있기를 바랐으며, 깡통 두들기는 소리가 새로운 리듬으로 창조되어 람바다가 되기를 기원했다.

교문에는 졸업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걸리고, 나는 아이들과 이별의 악수를 끝낸 뒤 자리에 돌아와 허탈감에 잠겨 있을 때, 뜻밖에도 녀석이 찾아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를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래, 이젠 그만 자고 열심히 살아라”했다. 그 때 녀석의 표정은 새 생활을 맞이하는 어떤 기대와 희망에 차 있었다. 나는 그렇게 녀석과 헤어진 뒤 허탈하고 씁쓸한 심정을 달래려고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를 삼켰다. 그리고 녀석을 서서히 잊어갔다.
그런데 며칠 전 명동에서 우연히 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이상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찍구’를 발랐으며,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꼭 잡지에 나오는 모델 같았다. 녀석의 곁에는 웬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내 마누라보다 키도 훨씬 크고 뚱뚱하지도 않았으며 엄청나게 더 예뻤다. 녀석과 그 여자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고,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녀석의 눈에는 눈곱도 없었다.
“야! 도사님이구나. 요즘 어디서 뭐하니?”
“회사 다녀요.”
“뭐 하는 회사?”
“조그만 건설회삽니다.”
“그래, 재미 좋아?”
“뭐, 그저 그렇죠.”
“요즘은 안 자냐?”
히죽히죽 웃으며 말이 없다. 곁에 있던 여자는 무슨 얘기인가 하고 눈이 동그랗다.
“그래, 그럼 또 만나.”
“예 선생님, 많이 늙으셨네요.”
“그래 먹고 사느라니 별 수 있나.”

그렇게 악수를 한 후 헤어졌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누워서 생각하니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수업시간이면 늘 잠만 자던 눈곱 낀 녀석의 모습이 밝고 활달한 모습으로 지나갔다. 앞으로 또 만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궁금해진다. 녀석의 앞길에 건강과 행운만이 가득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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