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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국어수업은 불가능한가

2005학년도 입시부터는 7차 교육과정에 따른 더욱 복잡해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러한 계제에 고등학교 국어 교육의 내실화를 도모하면서 국가적인 교육 현안들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전병삼 | 중앙대 부속고 교사


지금 이 나라 고등학교 교실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3학년생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1·2학년생까지도 학교 수업에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학생들은 선생님이나 학교를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학교 수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폭넓은 독서는커녕 간밤에 학원 수업이나 과외 수업을 받느라고, 또는 컴퓨터 게임 하느라고 자지 못한 잠만 보충하려고 한다. 선생님들은 그런 학생들이 그저 야속하고 미울 따름이다. 그런 중에도 특히 국어 수업 시간은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대로, 배우는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한결같이 국어 수업이 재미없단다. 도대체 신명이 나지 않는단다. 교과서는 누구에게나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모두가 멍청하고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따분한 국어수업의 주범, 수능시험
그 가장 큰 이유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언어영역 때문이다. 국어영역도 아니고 언어영역이란다. ‘국어 교육의 목표를 중심으로 한 시험으로서 특정한 교과목을 상정하지 않으며, 범교과적인 주제와 소재를 활용하여 출제’하는 언어영역이 모든 학문의 단백질인 국어 시간을 아예 망쳐 놓고 있다. 특히 3학년 수업을 진행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에 대한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발버둥쳐야 하는 국어과 선생님들은 해마다 마음이 상큼하지 못하다. 억지 춘향격으로 따라와 준 학생들에게 미안해서 얼굴마저 마주 대하기가 거북스럽다. 수업 시간에 그토록 강조했던 문학 작품들이나 명문장들에 대한 예상 문제는 실제의 언어영역 시험에 거의 출제되지 않으니 말이다. 학생들은 원망의 눈초리로 흘겨보는 것만 같고, 학부모들은 선생님의 무능함만을 탓하는 것 같아서 수학능력시험 성적 통지일이 두려운 것이다. 심지어는 ‘사설학원 강사들보다 그리도 못한가’하는 자괴감에 빠져서 좌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어 생활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하며, 언어와 국어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문학의 이해와 문학 작품 감상 능력을 기르며, 국어의 발전과 민족의 언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하게 한다.
가. 말과 글을 통하여 생각과 느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이해하며, 언어 사용에 대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태도를 가지게 한다.
나. 언어와 국어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익히고, 국어를 정확하게 사용하게 한다.
다. 문학 작품을 통하여 문학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창조적인 체험을 함으로써 미적 감수성을 기르며,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고등학교 국어과 교육목표의 미사여구를 좇아서 편찬된 「국어(상)」 「국어(하)」 교과서를 1학년에서 학습하고, 「화법」, 「독서」, 「작문」, 「문학」, 「문법」 등의 교과목은 2학년과 3학년에서 적당히 골라 최대한 충실히 학습하란다. 그래 놓고, 대학입시의 가장 중요한 전형 요소가 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교과서를 통해서 학습한 이론이나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 작품들이나 명문장들은 가급적 배제한 채, 학생들의 독서 상태를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여 교과서 밖의 전혀 생소한 문학 작품은 물론, 인문, 사회, 과학, 예술, 심지어 읽기마저도 거북스러운 철학이나 수학적인 제재문까지 제시하면서 언어 영역이라는 초교과적인 명목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국어 선생님들에게 몽땅 안겨 버렸다. 그리하여 지금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국어 선생님들만 초능력적인 만능박사가 되기 위해 주야장천 분투, 노력하는 중이다. 또한 전공자로되 비전공자가 되어버린 국어 선생님들의 서투르고 어설픈 넋두리에 넋을 잃은 체해야 하는 학생들은 스스로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서 국어 시간마다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이다.

‘언어영역’ 용어 ‘국어영역’으로 바꿔야

수리영역, 탐구영역, 외국어(영어)영역, 제2외국어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수학, 사회, 과학, 영어, 그리고 제2외국어 선생님들은 그래도 대학에서 전공한 지식을 십분 발휘해서 수업을 한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는 자신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마다 자신만만한 설명과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은 얼마 만큼의 기대감도 가질 수도 있으리라. 그러한 영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들의 대부분은 수업 시간에 학습한 중에서 다루어지니 말이다. 그러나 국어 선생님들이 대학에서 갈고 닦았던 학문의 상당 부분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언어영역을 통해서 감히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언어영역 문제의 대부분은 국어학이나 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부족한 다른 교과의 선생님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마저 나름대로 해답을 고를 수 있고, 문제에 대한 시시비비를 논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이제, 고등학교의 국어 수업 시간을 다시 흥미롭고 관심 있는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 선생님들은 흥에 겨워서 수업에 몰두하게 하고, 학생들은 끝종이 울리는 것을 안타까워 할 정도로 국어 수업에 빨려들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 SAT에서 직수입해다가 붙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이라는 용어를 하루 빨리 ‘국어영역’으로 바꿔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외국어 영역(영어든 제2외국어든)에 대비되는 술어의 사용도 될 뿐만 아니라, 정체성(줏대)을 확립할 수 있는 국어 교육을 어엿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리 탐구Ⅱ영역(사회 및 과학)을 단순히 ‘탐구영역’으로 바꾸자고 줄곧 주장해 온 바, 2005학년도 수학능력시험부터 그리 바뀌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함. 부연컨대,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수학Ⅰ만 평가하는 것을 ‘수리(가)’형으로, 수학Ⅰ과 Ⅱ 및 선택과목(미분과 적분,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까지를 평가하는 것을 ‘수리(나)’형으로 바꾸어 지칭하는 것이 언어 구사 단계상 적절하다고 판단됨.>
다음으로, ‘국어영역’에서 다루는 문학 작품이나 일반 제재문의 절반 내지 60% 정도는 교과서를 통해서 두루 학습한 것들 중에서 제시하고, 그 나머지를 현행처럼 다양화함으로써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국어를 정확하게 사용하게 하며, 문학에 대한 이해와 문학 작품을 바르게 감상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서, ‘국어영역’의 문제 출제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좀더 국어적인 문제, 좀더 문학적인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 그야말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들의 국어나 문학에 대한 수준을 충분히 고려하여, 정성을 다해 다듬은 문제로써 대학수학능력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일반 제재문의 교양성이나 문학 작품의 작품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확인하여 진지하게 출제해야 한다. 문제를 만들기 위한 문제, 즉 지나치게 기교적인 문제나 궁벽한 유형의 문제는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국어 수업에 따른 결과의 평가는 다만 학교의 내신성적 산출 도구로밖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교 수업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을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이 영역의 용어 수정과 더불어서, 그에 따른 제시문의 전환적 활용과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의 평가는 요즈음 현안으로 부상해 있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고, 나아가서 사교육의 병폐나 재수생 문제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방편도 될 것임이 자명하다.
대학입학 전형 요소의 근간이 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어설프게 도입된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더욱이 2005학년도 입시부터는 7차 교육과정에 따른 더욱 복잡해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러한 계제에 고등학교 국어 교육의 내실화를 도모하면서 국가적인 교육 현안들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위에서 나름대로 제시한 몇 가지 방안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서 결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법률적인 복잡한 수정 작업도 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관계 당국의 빠른 인식 전환과 그에 따른 명쾌한 실행만이 필요할 따름이다. 선생님들이나 학생들 모두 한껏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진지한 분위기의 교실에서, 시간마다 즐겁고 신나는 국어 수업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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