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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너에게 묻는다!

조효현 | 서울 문일고 교사


물, 너는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기에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너를 일컬어 “물은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의 기본적인 원소이며 모든 물질은 물이 형태를 달리한 것”이라 하고 이규보(李奎報)는 “고구려 동명왕의 모비(母妃) 유화부인(柳花夫人)이 물(熊心淵)에서 나왔고 신라 박혁거세의 비(妃) 알영부인(閼英夫人)도 물(閼英井)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東國李相國集).
그렇다. 생명이 비롯된 원초적 물질인 단백질은 너 물(海底)에서 생성되었으며 그것이 진화되어 생물이 되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인류도 생겨났다. 하여 사람들은 물 너를 생수(生水)니, 생명수(生命水)니, 약수(藥水)니, 옥수(玉水)니, 옥액(玉液)이니, 감로(甘露)니, 감로수(甘露水)니, 영생수(永生水)니 하며 미화하여 예찬한다.

물, 너는 음(陰)이고 여자(女子)이다.
그러기에 야삼경(夜三更)에 남몰래 월장(越牆)을 한 이팔청춘 몽룡이는 춘향에게 이르기를 “너는 죽어 물이 되데 은하수(銀河水), 폭포수(瀑布水), 만경창해수(萬頃滄海水), 청계수(淸溪水), 옥계수(玉溪水), 일대장강(一大長江) 던져두고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뭄 때도 일상진진 젖어 있는 음양수(陰陽水)란 물이 되라”하고(春香傳) 무산(巫山)의 여신(女神) 요희(瑤姬)는 고당대(高塘臺)에서 쉬고 있는 회왕(懷王)과 뜨거운 운우의 정(雲雨之情)을 나누고는 “나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 머물겠다”고 하지 않던가(巫山之夢).
그렇다. 물 너는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니 더러는 구름도 되고 비도 된다. 그러나 너 물은 모습을 바꾸어도 변할 수 없는 음(陰)이려니 음은 밤이고 밤은 음양(陰陽)이 화합하기에 좋은 시간이며 음양의 화합은 만물을 생성한다.

물, 너는 색정(色情)이다.
그러기에 골딩(Golding, W.)은 『핀처 마틴(Pincher Martin)』에서 물 너를 일컬어 “물은 음욕(淫慾) 그 자체라”하고 강신재는 『황량한 날의 동화』에서 “차가운 물은 육감적이고 넘실거리는 압력은 징그럽지 않을 정도로 욕정적이기까지 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그렇기에 싱그럽게 피어나는 꽃은 ‘물 오른 꽃’이고 덧없이 시드는 꽃은 ‘한물 간 꽃’이다.

물, 너는 신성(神聖)하다.
그러기에 저 옛날 신라(新羅)에서는 사독(四瀆)이라 하여 4대 강의 너에게 제사를 지냈고 고려에서도(八關祭) 그랬고 조선에서도(山川祭) 그랬다.

물, 너는 순수(純水)하다.
그러기에 성서(聖書)는 너 “물로서 원죄를 씻는다”하고 너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또 풍습에는 “인간이 신과 교감하려면 세속의 때를 씻어야만 한다”하고 “망자(亡子)가 피안의 낙토(彼岸樂土)에 가 부활(復活)하려면 이승의 때를 씻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제사를 지내는 이는 너 물로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고 망자를 보내는 이들은 물 너로 주검을 씻어주지 않던가.
그렇다. 물 너는 순수하기에 세속의 때와 죄를 씻어준다. 하여 허유(許由)는 기산(箕山)의 영수(潁水)에서 더러워진 귀를 물 너로 씻고 예수는 요단강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위해 물 너로 세례를 받는다.[PAGE BREAK]물, 너는 신통(神通)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너를 놓고 소원을 빌고 너로 하여 소원을 성취(所願成就)하기도 한다.
그렇다. 춘향 어미 월매는 너(井華水)를 떠놓고 “일겨상경후(一去上京後) 소식 돈절(頓絶)한 우리 사위 이몽룡이 높은 벼슬 띠고 내려와 생사경각(生死境刻)에 있는 내 딸 춘향이를 살려달라”고 빌고(春香傳) 부처가 되길 소원하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관음보살(觀音菩薩)의 목욕수(産浴水)에 몸을 적시고 성불(成佛)한다(三國遺事).

물, 너는 선(善)하다.
그러기에 노자(老子)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하고 너 “물의 선함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아니하고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니 도(道)에 가깝다”고 한다. 그리고 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에 따라 살고 싶으면 그 방법을 물에서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하며 “몸을 둠에(地位)는 물이 낮은 곳만을 골라 머물 듯이 평지에 두어야 하고, 마음은 물이 가득히 고인 연못처럼 깊게 지니어 그윽해야 하고, 은혜를 베풀 때는 물이 만물을 길러내되 보수를 바라지 않듯이 사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게 베풀어야 하고, 말은 물이 흐를 때는 흐르고 멈출 때는 멈추듯이 신의가 있어야 하고, 정치는 물이 만물을 절로 자라나게 하듯이 백성들이 절로 다스려지게 해야 한다”고 했다(道德經 第八章).
그렇다. 물 너의 덕행을 배우면 남들과 다투는 일은 없을 것이거니 원망이나 재앙을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물, 너는 부드럽다.
그러기에 노자는 또 너를 비유하여 “천하의 물보다 더 연약한 것은 없다(天下莫柔弱於水)”며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데는 물보다 나은 것이 없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弱之勝强)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柔之勝剛)”고 했다(道德經 第七十八章).

물, 너는 지혜롭다.
그러기에 공자(孔子)는 “단단한 돌이나 쇠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깨지기 쉽지만 물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는 법이 없으니 그것은 물이 모든 것에 대해서 부드럽고 연한 까닭이다”라며 “저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보라. 물은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에 스스로 굽히고 적응함으로써 줄기차게 흘러 드디어는 바다에 이른다. 그러니 적응하는 힘이 자유자재로워야 사람도 부닥친 운명에 굳센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물 너는 자연에 역행하지 않고 순응한다. 지형에 따라 흐르고 형태에 따라 변하며 고인다. 그러기에 공자는 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知者樂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仁者樂山)”고 했다(論語 第六篇 雍也 二十一章).
물, 너는 생(生)과 사(死)의 경계(境界)이다.
그러기에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처는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님은 마침내 그 물을 건넸네(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으니(墮河而死) /님이여 나는 어찌하리까(公將奈何)”하며 통곡을 한다(古今沽).[PAGE BREAK]물, 너는 환생(還生)이요 부활(復活)이다.
그러기에 바리공주는 위중한 부모를 구하기 위해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으로 가 생명의 약수(藥水)인 너를 가져와 죽은 부모를 살려내고(바리公主 說話) 여신(女神) 이슈타르는 생명의 물 너를 손에 넣기 위하여 죽음의 세계로 간다(바빌로니아 神話).
그렇다. 물 너는 회소(回蘇)요 소생(疏生)이다. 너 물은 지상에서 태양열을 흡수하여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안개가 되어 천상으로 올라갔다가 비가 되고, 눈이 되고, 우박이 되어 다시 내려온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업(業)에 따라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윤회(輪廻)처럼.

물, 너는 무상(無常)이다.
그러기에 황진이는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로 흐르는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도 저 물 같아 가고 아니 오노라”고 탄식한다.
그렇다. 오죽하면 초로인생(草路人生)이라고 하던가. 부귀(富貴)도, 영화(榮華)도, 권력(權力)도, 명예(名譽)도, 사랑도, 목숨도 한낱 풀잎에 맺힌 한 방울의 이슬(물)이다. 해가 뜨면 이내 사라지고 마는….

물, 너는 가없는 모습으로 살아 숨을 쉬는 신비로운 존재이다.
그러기에 물 너는 때로는 청순한 소녀처럼 맑으며 순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녀의 가슴처럼 흐리며 더럽기도 하고, 때로는 양처럼 온순하며 부드럽기도 하고, 때로는 승냥이처럼 난폭하며 거칠기도 하다. 그리고 또 때로는 생명의 모태(母胎)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죽음의 나락(那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성인군자(聖人君子)처럼 덕(德)이 있는 모습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시정잡배(市井雜輩)처럼 속(俗)된 모습이 되기도 한다.
하여 물 너는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다.

그나저나, 나는 미련하여 생사(生死)가 돌고 도는 수레바퀴(生死輪廻)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가련한 중생(衆生)이거니 나고 죽는 윤회마다 애오라지 바라는 건 나도 너 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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