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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와 이메일

최홍숙 | 충남 학봉초 교사


1년에 두 번 있는 방학 과제 중, 학생들에게 필수로 제시되는 것 중의 하나가 편지쓰기이다. 선생님, 부모님, 친구, 친척에게 편지를 보내도록 하고 방학이 끝난 후 점검까지 한다. 학생들에게 답장 한번 안 해 주면서 편지했나 안했나는 꼼꼼히 체크했다. 방학 과제상을 주어야 하니까!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후 지금껏 그렇게 해왔다. 현진이의 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현진이는 십여년 전 내가 가르친 1학년생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방학 중 많은 학생들로부터 과제 해결성이 짙은 편지를 받았는데, 현진이만은 답장을 안 해줄 수가 없었다. 현진이의 아버지와는 같은 교직원이었기 때문에 개학하면 마주칠 것이고, 1학년 어린것이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을 안 하면 눈총을 받을 것 같아서 엽서에 큰 글씨로 휘갈겨 답장을 보냈었다. 그런 이기적이고 거만함은 현진이 때문에 붓과 가까이 하게 되는 오늘의 나로 만들었다. 현진이 어머니가 선생님의 답장을 애지중지 하는 아들의 마음을 이렇게 전해 줬기 때문이다.
“엄마, 이거 버리지 마아”하며 식탁 위에 세워 놓곤 날마다 읽어보며 즐거워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전하는 현진이 어머니의 표정은 아들을 키우는 보람과, 행복과,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번 담임은 영원한 담임인가? 지금도 현진이 아버지와 가끔 마주치면, 현진이 아버지는 얼른 달려와 내게 악수를 청하며 허리를 굽힌다.
내가 현진에게 보낸 사연은 대충 이런 것 이었다.

현진아 잘 있었니?
네가 학교 들어오기 전 아빠가 자주 네 이야기를 하셔서
선생님은 네가 예쁜 여자인 줄만 알았는데 씩씩한 남자였지 뭐니?
네가 착하고 씩씩하고 키도 크고 인사도 잘하고 친구들하고도 안 싸우고 잘 놀아서 선생님은 현진이가 참 좋단다.
앞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라
안녕.
될 수 있으면 적게 쓰려고 엽서로 보냈던 것이다. 현진이 아빠는 현진이를 학교 넣고서 얼마나 교실을 훔쳐보고 싶었을까? 춤 잘 추는 여자 어린이를 예쁘게 꾸며 단위에 올려놓고 중간놀이 할 때는 ‘내가 왜 딸을 낳지 못 했는가’하며 자기 아들이 뽑히지 못해 마냥 부러워 한숨을 쉬었단다.
현진이 이후로는 방학마다 엽서를 한 움큼 사다 놓고 모두 답장을 해주었다. 어쩐지 내 글을 받는 사람은 무척이나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성을 다하여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쓰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학생들의 가슴 떨림을 보기 위해 계속 편지를 쓴다.
일기장 밑에 소곤거리듯 남몰래 주는 단 두 줄의 글도, 공책 검사를 하고 잘했다고 써주는 외마디 문장도 그들은 좋아한다. 그들은 선생님의 필적으로 검사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말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
[PAGE BREAK]학생들에게 부여하던 편지쓰기가 세월이 흐른 지금 이메일로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들은 이메일을 장난감 다루듯 가볍고 쉽게 잘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4학년생들은 아직 자유롭지 못한 학생이 많다. 1학년때부터 이메일을 갖도록 지도하지만 생활화가 안 되어서 자기 아이디를 까먹거나 집에 인터넷이 안 깔려서 못한다고도 한다. 어느 날 매주 한번 있는 컴퓨터 시간에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라고 시간을 준 후 답장과 함께 잘된 편지를 작품으로 만들어 복도에 게시해 놓는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저마다 멋지게 편지를 날렸고, 개구쟁이들의 아부에 기분이 우쭐해진 나는 그 동안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놓은 사진과 사연을 곁들여 컬러로 뽑아 꾸며 놓았다. 그 중에서 예쁜 합창복을 입은 진용이 사진과 함께.
“아라비아 왕자 같이 잘생긴 네가 공부까지 열심히 해서 1등을 하겠다니 선생님은 참 흐믓하다”라고 전교생이 다 지나다니는 곳에 게시해 놓았더니, 학습발표회때 그것을 보신 진용이 아버지가 음료수 한 박스를 얼른 사가지고 오셨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 칭찬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부모들의 마음,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사랑을 주고받는 학생과 선생님이 많은 나라가 되어 온 세상이 좀 더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 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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