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해마다 4월 1일 만우절이 되면 선생님을 속이기 위해 옆 반 아이들과 교실을 바꿔서 들어간다든지, 의자를 반대로 돌려 앉아 교실 앞과 뒤를 바꿔 선생님을 당황시킬 계획을 누구나 세워봤을 것이다. 물론 선생님들은 그렇게 쉽게 속지 않으셨지만 말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선생님의 만우절 거짓말 계획에 깜빡 속아보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며 학급경영 연수를 받다가 선배 선생님의 만우절 전통에 관해 듣고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며 ‘나도 아이들을 맡으면 꼭 해봐야지.’하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고대하고 기다리던 아이들과의 첫만남. 하지만 1기들과의 만남이 그리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여 선생님의 사랑 표현 방식에 특히 남자아이들은 무안할 정도로 거부감을 표시했고, 아이들의 모든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구체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지키기를 강조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선생님은 왜 이렇게 까다로워요? 작년 선생님은 이렇게 안 했어요.”라는 말을 하며 의문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그럴수록 난 하루 종일 아이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밤늦도록 뭔가를 만들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수첩에 적으면서 실행에 옮겨봤지만 당장 보이지 않는 결과에 대한 답답함으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3월을 다 보내고 4월이 찾아왔다. 4월 1일 아침, 난 고민에 빠졌다.
‘만우절이라고 아이들 곁을 떠난다는 거짓말을 했다가 다들 잘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이 아이들이 과연 내가 떠난다고 슬퍼하며 울까?’
정말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계속 망설이다가 아이들이 컴퓨터 수업을 받으러 간 사이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준비를 했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로 들어왔다. 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오늘따라 선생님이 컴퓨터실로 데리러 안 왔는데도, 고개를 그렇게 푹 숙이고 앉아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과 즐겁게 재잘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선생님! 기분 안 좋으세요?”라는 말을 했지만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수업 시작종이 울려도 꼼짝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선생님이 드디어 이상하게 여겨졌나 보다. 아이들의 관심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5분쯤 지났을 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오늘따라 좀 이상하죠? 선생님도 지금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워서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무슨 일인데요?”
“선생님이 대학원에 다니는 건 다들 알고 있죠? 여러분이 컴퓨터실에 간 사이에 대학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선생님이 이번에 아주 큰 프로젝트를 맡아 호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선생님한테는 아주 좋은 기횐데, 여러분을 생각하니 아무런 생각도 안 들고….”[PAGE BREAK]너무 분위기를 잡았던 탓일까? 나 자신도 이 분위기에 빠져들어 눈물이 맺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들은 처음엔 “에이! 오늘 만우절인 거 다 알아요. 거짓말하지 마세요.”라며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도 믿을 수 없는데 여러분은 당연히 믿을 수 없겠죠. 아까 교장·교감 선생님과 상의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떠나게 되어 새 담임선생님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해요. 그래서 당분간은 교감 선생님이 대신해서 여러분을 맡아주실 거예요. 교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길 바래요.”
이쯤 되니까 아이들 분위기가 꽤 심각해졌다. 남자 아이들은 “얼마나 가 있으실 건데요?”, “에이! 그래도 난 안 믿어요.”라며 장난을 치는 모습도 보였지만 여자 아이들은 꽤 침울한 표정을 보이며 뭔가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월 중순에 전학 왔지만 학급 일에 적극적이고 나에게 자주 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기훈이가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다른 남자 아이들은 짓궂게 운다고 놀렸지만 여자 아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여러분과 함께 한 한 달이 선생님은 너무 그립고 아쉬워요. 이제 5교시면 전담선생님 시간이니 이 시간이 여러분과 함께 할 마지막 시간인데, 혹시 선생님한테 할 얘기가 있다면 지금 해주면 좋겠어요.”
한두 명씩 손을 들어 마지막 인사말을 하기 시작하니 장난치던 아이들도 제법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여러분과 만난 첫날에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껴안기 인사를 하자고 했었는데, 남자 꿈쟁이들이 너무 심하게 거부를 해서 선생님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었어요. 오늘은 여러분과 선생님이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니까 우리 마지막으로 껴안기 인사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모두 선생님한테 껴안기 인사를 해줄 수 있나요?”
기훈이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는지 더욱 큰 소리로 울고 여자 아이들도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첫날 꽤나 껴안기 인사를 거부했던 양제가 심각한 얼굴로 껴안기 인사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결국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껴안고 마지막 당부 말을 덧붙이며 인사했다. 아이들 중 몇 명은 다른 아이들이 인사하는 동안 얼른 쪽지를 써서 내 손에 꼭 쥐어주기도 했다. 결국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장난치며 웃고 있던 종훈이도 여자 아이들과 함께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너무 슬퍼하며 우는 바람에 아이들은 점심시간도 10분이나 넘겨버리고 급하게 급식실로 올라가고, 아이들에게 진실을 밝힐 기회를 놓쳐 버렸다. 점심시간에 ‘제발 가지 말라’는 여자 아이들의 애원에 ‘그렇게 해보마.’ 어영부영 대답하고, 5교시도 다른 선생님 시간이라 제대로 얘기도 못 나누고 보내니 아이들은 집에서 꽤 걱정을 했던 모양이다. 그날은 또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라 우리 반 홈페이지에 늦게 들어갔더니 아이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남긴 흔적을 보며 미안함 반 기쁨 반으로 편지를 남겼다.
아침까지도 내 글을 확인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아침에 내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끼리 “선생님 오셨다!”는 신호를 눈짓으로 보내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얼마나 귀엽고 이뻤는지 모른다. 물론 거짓말임이 밝혀지고 그 원성은 엄청났지만 말이다.[PAGE BREAK]그 이듬해에도 물론 2기들의 만우절 행사를 치렀다. 1기들의 방해로 진땀을 뺐지만. 2기들의 사랑 표현방식은 또 달랐다. 특히 남자 아이들! 여자 아이들은 1기들 때처럼 그렇게 엉엉 울었지만 남자 아이들은 비행기를 폭파시키겠다느니 선생님 따라 이민 간다느니, 정말 귀여웠다. 가지 말라며 칠판 가득히 메시지를 남겼던 아이들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결국 난 그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후 만우절이라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고백했는데, 아이들은 그 분위기에 이미 깊숙이 빠져 있는지 거짓말이라는 말을 못 듣고 더욱 열을 내며 칠판에 가지 말라는 말을 적고 있었다. 만우절 행사 기념 촬영을 하자는 말도 건너건너 들어 ‘선생님이 유학 가서 보시려고 사진을 찍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던 아이들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물론 거짓말임이 밝혀진 순간 칠판은 선생님에 대한 원망의 소리로 가득 차 버렸지만….
학년 말 ‘우리 반 10대 사건’을 선정할 때 만우절 행사가 1위로 꼽혔다. 학급문집을 만들 때 많은 아이들이 만우절 행사에 관한 글과 만화를 그렸다. 아이들에게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앞으로 우리 꿈쟁이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될 ‘만우절 행사’! 어쩌면 당연시 여기고 지나가 버릴지도 모를 선생님과 아이들의 만남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앞으로도 어김없이 만우절에는 열심히 거짓말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