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린아이들을 좋아했고, 또한 나의 가장 큰 꿈이 교사가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교사가 되기 전에는 이런 말이 이해가 정말 되지 않았다. 남을 가르친다는 일은 누가 보아도 좋고 쉬운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초등교사의 꿈을 이루고 나서 기쁜 일도 많았지만 마음 아픈 여러 순간들을 경험했었다.
5월이 되면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행복한 가정, 사랑이 싹트는 가정을 흔히 이야기 하지만 내가 본 아이들 중에는 이러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 많았다. 오히려 이런 학생들에게는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과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질 것이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들은 너무도 어려서 부모님께 의존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탓하며 속상해 한 적이 많다.
내가 교육대학교 3학년 때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로 실습을 간 적이 있다. 대학시절 4차례의 실습이 있었는데, 그 당시 학교까지의 거리가 너무도 멀어 새벽 5시 30분쯤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던 나에게는 꽤나 스트레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내가 갔던 실습학교는 프로그램이 매우 빡빡하여 동기들이 지원을 꺼려하던 학교였다. 나는 교생으로서 학급 전체의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도 짧고 실습 중에는 매우 바쁜 일정이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 교실에 가면 학급의 학생 중에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학생이나 그 동안 담임교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아동을 찾아 2주 동안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며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는 사랑을 받는 학생에게도 기쁨이겠지만 나의 사랑을 받고 밝은 표정으로 변화되어 가는 학생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큰 보람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실습에서는 어떤 아이를 만날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간 교실에서 처음 만난 학생들의 표정에는 기대가 비쳤고, 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설레기 시작했다.
이번 실습에서 만난 나의 사랑을 받을 아이는 바로 ‘영혜’라는 남자아이였다. 영혜는 표정이 밝지 못하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매우 쑥스러워 하는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며칠동안 영혜를 지켜보며, 참 너무 예쁜 아이인데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오지 못하고 숙제 또한 잘 챙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영혜에게 관심을 보여주었고 이를 아는지 영혜도 나에게 조금은 마음을 여는 것 같았다. 영혜는 내가 교생선생님이라 편해서 그랬는지 가끔은 “선생님, 피아노도 못 쳐”라든지 “선생님이 글씨도 못써”라는 식의 반말을 하곤 해 나를 당황하게 했다. 실습이 끝날 쯤 알게 된 사실인데, 영혜네 가정은 어머니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 교통사고의 보상 문제로 바쁘게 지내셨고, 영혜와 어린 동생들은 제대로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PAGE BREAK]실습이 끝나기 3일전 아침이었다. 나는 영혜에게 “선생님 좀 도와달라”며 음악실에 단둘이 학습자료를 챙기러 간 적이 있다. 평소 아침도 먹지 못하고 오는 영혜가 너무 안쓰러워 집에서 챙겨온 작은 초코파이를 영혜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곤 다른 아이보다 덩치가 작은 영혜를 무릎에 앉히고 영혜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때 영혜가 늘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영혜는 너무도 씩씩하더라. 영혜 같은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었다. 교생실습이 끝날 쯤 영혜는 나에게 편지 2통을 주었다. 한 통에는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선생님께 반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자기처럼 씩씩하게 꼭 키우라’는 부탁(?)의 말들이 들어 있었다. 실습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학교를 떠나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영혜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영혜에게 정을 주지 않았으면 하고 후회를 하기도 했다. 더 오랫동안 같이 있어주질 못하면서 정만 들인 것 같아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실습이 끝난 후 다시 한번 교실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보고싶던 영혜는 교실에 없었다. 영혜 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어 큰집에 아이들만 보냈다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쯤 영혜는 씩씩하게 자라서 중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도 가정이 어려운 학생을 만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없다는 사실에 속상할 때가 많다. 그런 학생일수록 학습상태가 좋지 못하여 학교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또한 돌봐 줄 사람이 없다. 그런 학생에게 교사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올해 교사로서 4년차에 접어든 나는 5학년을 담임하게 되었다. 학기초가 시작되면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적도록 한다. 물론 여기에는 가족의 직업, 나이, 이런 것들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놀아주는 사람은?’, ‘우리가정의 고민거리는?’, ‘밥먹는 시간은?’과 같이 아주 평범한 내용을 적는다. 5학년쯤 되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과 면담을 통해 가정 환경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학생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서 가급적 이런 내용은 묻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교사가 학생들의 환경을 알려고 해도 학생들이 이미 마음을 닫아버린 경우가 많아 이러한 사실을 알기가 어렵다. 올해는 가정 환경이 어려운 학생이 많아 더욱더 마음이 쓰였다.
우리 반에는 현철이라는 아이가 있다. 현철이는 엄마가 집을 나가 어려서부터 아빠와 할머니에 의해 길러졌다. 다행히 현철이 아버지는 현철이에게 다정다감한 분이신 듯하다. 하지만 현철이에게는 항상 현철이 아버지가 피우시는 지독한 담배 냄새가 배어 있다. 현철이는 유치원 때 엄마가 딱 한번 자기를 보러 왔었다고 한다. 그 때 엄마의 얼굴을 처음 보았고 그 얼굴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현철이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여 우리 반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학생이다. 하루 일과중 내가 우리 반 아이들 일기검사를 하는 동안 ‘오늘은 우리 현철이가 무엇을 적어왔을까?’ 하는 기대로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준영이는 자폐와 우울증이 겹쳐 4세 수준의 사고력을 가진 아이인데, 교사로서 나에게 여러 가지 고민들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준영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학급에 잘 적응하고 있고, 우리 반 학급 친구들은 준영이를 평범한 친구로 대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학급 활동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급식을 먹고 자기가 스스로 치우는 일, 친구들과 청소를 함께 하는 일, 체육시간에 줄을 맞춰 서는 일 등 남들에게는 너무도 평범한 일을 준영이가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PAGE BREAK]우리 반 아이들의 이런 상황은 나에게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할 의지를 안겨주었다. 오랜 고민 끝에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이들에게 현재보다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도록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현재 학급에서 마음 편하게 생활하며 학습 능력이 향상되도록 도와줄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정말 한계가 있다. 가정에 돌아가면 제자리이고, 또한 1년이 지나 나와 헤어지면 가끔 만나 안부를 묻고 애정을 표현하는 일뿐이니 말이다.
이러한 아이들을 위해 올해에는 유네스코에서 운영하는 CCAP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 학기초라 너무도 바빠 제대로 계획서를 작성하지 못해 포기한 나에게 행운처럼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나라에 있는 여러 외국인 자원봉사자가 수업을 해주는 것으로 캐나다인, 영국인, 일본인 등 총 6명의 선생님이 오셔서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외국인 선생님을 만날 생각을 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벌써부터 캐나다에 관한 책들을 읽고 다음에 오실 선생님을 정하는 등 모두 너무도 즐거운 고민에 빠져 살고 있다. 1년이 지나 우리 아이들에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겪을지 기대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고, 더 넓은 세상에 대해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훌륭한 교사는 따로 있지 않다고 본다.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학년 동안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부모’로 남는 것이다. 사실 학년이 끝나면 내가 옛날 제자들의 부모가 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의 새 선생님은 더 좋은 분이시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또한 새 담임 선생님께 내가 학부모가 된 것처럼 부탁의 말들도 잊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헤어질 때마다 이런 말들을 해주곤 한다. 아마 부모님 다음으로 너희를 사랑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선생님일 거라고.